제목 | 과공비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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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12-17 | 조회수10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오늘날에 어느 누가 세례자 요한처럼 하였다면 자기가 메시아라고도 하면서 자기 말을 따르라고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어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말할 때 얼마나 자신을 낮추는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좋은 것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의 뜻은 지나친 공손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즉 공손함도 지나치면 예의에 벗어난다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예수님께서 지나가시자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며 자기의 제자들에게 그분에게 가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의 제자에게 기다릴 분이 예수님이냐고 물어보게도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로서 세례를 주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위대한 세례자도 예수님께서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던 제자들보다 더 높이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일컬어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 중에 그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이도 그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과연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순교를 당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간 이들로서 하늘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이에게 해당할 것입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이를 생각해 봅니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기틀을 놓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신성 이성을 함께 지닌 인간입니다. 그런데 물로서라면 이는 땅의 것에 해당 될 것이요 성령으로 거듭 태어나면 그는 하늘나라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세례자는 마치 과공비례처럼 생각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높이 들어올렸습니다. 흠숭을 받으실 분은 성부 성자 성령께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에 해당하는 성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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