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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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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17 조회수216 추천수3 반대(0) 신고

231217. 대림 제3주일.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오늘은 ‘기쁨주일’(gaudete) 입니다. ‘핑크 빛’ 대림초에 불이 붙여졌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태웁니다. 빛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도 기쁨입니다.
 
<입당송>에서는 노래합니다.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필리 4,4.5 참조)
 
<제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이사 61,10-11)

<화답송>에서는 성모님의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루카 1,46)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입니다.”(1데살 5,16-18)
 
<복음 환호송>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노래합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이사 61,1 참조)

그렇습니다. 이토록 오늘 말씀은 기쁨의 선포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기쁨으로 나서야 하는 곳은 당혹스럽게도 광야입니다. 우리는 설레는 기다림과 고대하는 기쁨의 핑크빛 옷을 입고서 어처구니없게도 텅 빈 광야로 나서야 합니다. 그곳에서 광야처럼 텅 빈 사람, 요한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증언하며 기뻐합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요한 3,29)
 
참으로, 요한은 자신을 온전히 비워버린 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외치는 이’가 아니고, 그저 ‘외치는 이의 소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비워져 있기에, 참된 소리가 되었습니다. 비어 있는 자 만이 온전한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소리를 내는 이는 피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입니다. 피리가 결코 스스로 소리를 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붓이 스스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붓을 쥔 이가 글씨를 쓰는 것이듯이 말입니다. 그처럼, 요한은 자신이 ‘외치는 이’가 아니라, ‘외치는 이의 소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그저 비어 있는 피리에 지나지 않으며, 글을 쓰는 이의 손에 쥐어져 있는 붓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진정 비어있는 이였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말이 아니라,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퍼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비어졌기에 말씀을 반겨 맞아들였고, 들어 온 그 말씀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참된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비어져 있음은 겸손과 낮춤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다른 이의 발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나, 그 자격마저 없는 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

본래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 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요한은 그런 종의 일마저도 할 만한 조격조차 없는 부당한 몸이라고 고백합니다.
 
한편, 그는 자신이 비어져 있는지라 다른 이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분을 알아보고서 선포합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그렇습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계시건만, 우리는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감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분을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그렇습니다. 어둠은 그분을 보지 못합니다. 빛이 들어와 눈이 열려야 그분을 보게 됩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눈을 뜨고도 “그들과 함께 걸으시는”(루카 24,15)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야 “눈이 열려”(루카 24,31) 알아보았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서 영의 눈이 열려면, 보게 됩니다. 곧 빛이 비추어 눈이 열리는 것이 “깨어남”입니다. 그러니 “깨어있기” 위해서는 먼저 깨어나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도 함께 깨어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 4.4)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열려 주님의 현존을 보게 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기쁨’ 안에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말을 너희에게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함이다.”(요한 15,11).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
 
주님!
화살표 같은 존재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붓이 되어 당신의 말씀을 삶으로 쓰게 하소서.
피리가 되어 당신의 노래를 온몸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주인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생명의 춤이 되고, 당신 축복의 강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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