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2월 1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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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2-18 | 조회수20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12월 18일] 마태 1,18-24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인과(因果)관계에 대해, 즉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결과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내가 이런저런 것들을 잘 해서 혹은 다른 누구 덕분에 그 일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안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는 일단 나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찾아보고, 그것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남의 탓’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과관계 안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영향은 생각하지 않고 철저히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신앙인은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자신과 타인이 그 일에 미친 영향도 생각해야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일을 포함한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인간에 의한 인과관계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것으로 즉 하느님의 ‘섭리’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따라야만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이 나를 통해, 내 삶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셉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황당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자연의 법칙을 뛰어넘는 너무나 터무니 없게 들리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일을 인간의 가치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 일의 ‘인과관계’를 인간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은 겁니다. 대신 그 일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놀라운 섭리로 일으키시는 ‘신비’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그 일의 인과관계를 하느님과 그분의 뜻 안에서 찾았던 겁니다. 그랬기에 어렵지만 천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거기서 한술을 더 뜹니다. 요셉에게 순명을 넘어서서 하느님께서 부여하시는 ‘소명’을 따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마태 1,21)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요셉의 자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천사는 그에게 그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라고, 다시 말해 요셉에게 그 아기의 아버지가 되어주라고 명령합니다. 작고 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날 구세주를 보살피는 ‘아버지’로서의 소명을 다하라는 것이지요. 요셉은 그 소명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명하고 따르는 실천을 통해 자신이 성자의 아버지가 될, 주님의 참된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 겁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요셉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인과관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하느님은 요셉이 미워서, 그를 괴롭히시려고 그에게 그런 일을 겪게 하신게 아닙니다. 요셉을 통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이지요. 그 뜻은 요셉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 효과를 누리게 될 우리 모두에게도 큰 유익과 기쁨을 가져다주게될 ‘참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은 요셉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괴롭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게 아닐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스스로를 더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좋은 것들을 주시려고 그러실까?’, ‘나를 통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하느님의 섭리가 드러나게될까?’ 이런 희망을 품고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되새겨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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