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8. 12월 18일.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마태 1,24)
<제1독서>에서 예언자 예레미아는 주님의 오심을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예레 23,5-6)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화답송>을 바쳤습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시편 72,7 참조)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야기’입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마리아인데 비해, 여기 <마태오복음>에서는 요셉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태어날 아기는 요셉의 혈통에서 태어날 “다윗의 자손”(마태 1,31)으로 제시됩니다. 그리고 구세주 메시아의 탄생은 요셉의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통해서 성취됩니다. 그렇다면, 요셉 그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 <복음>에서 그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마태오복음>에서 “의로움”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보살펴줌이요(25,34-40), 산상설교에서는 참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요(5,6), 하느님 나라와 함께 찾으라고 권유된다(6,33). 그러이 ‘의로움’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품행’과 관련됩니다. 그러니 “의로운 사람”이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믿되,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행동하되, 순명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는 진정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마태 1,24)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혼하기도 전에 아내를 포기해야만 했고, 아들을 얻기도 전에 이미 아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구원의 협조자가 된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 안에 머물고,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행위는 성령의 작용, 곧 은총에서 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모두 하느님의 도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서 활동하시도록 하는 도구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믿음과 순명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마태 1,22)
그러니 우리 모두는 성 요셉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조력자요 협력자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곧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좋으신 계획이 완성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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