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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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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20 조회수169 추천수4 반대(0) 신고

[12월 20일] 루카 1,26-38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 내내 우리는 하느님께서 구세주를 이 세상에 보내시려는 계획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요셉을, 화요일에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모습을 보았고, 오늘은 마리아의 차례이지요.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의 집을 찾아가 그녀에게 인사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그 어떤 설명도 하기 전에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아직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듣지도, 그분의 뜻을 수락하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진 다음이라면, 마리아의 태중에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기에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니 당신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당신에게 은총이 가득하다’고 하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한 없는 은총과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과 자비를 생각한다면 이 말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 베푸신 충만한 은총을 자기 안에 가득히 담고 있지 못한 다른 이들이 이상하지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마리아는 자기 안에 은총을 가득히 담고 있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출산하시던 그 때를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마리아가 출산을 위해 베들레헴에 갔을 때 여관은 이미 다른 손님들로 만원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마구간은 텅 비어 있었기에 주님께서는 여관방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요. 바로 이 점이 은총을 머금는 정도에 차이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 마음은 자주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하느님을 모실 자리,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담아둘 자리가 없지만, 마리아는 다른 그 무엇보다 하느님을 먼저 모셨기에,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우선적으로 담아두었기에 마리아의 마음과 영혼이 ‘은총으로 가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의 마음가짐이 천사의 수태고지에 대한 이 응답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각자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자신도 바랐다는 뜻입니다. 마리아의 희망이 하느님의 희망과 같아졌다는 뜻입니다. 그랬기에 그분의 삶이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장(場)이 된 것이지요.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냐며 일축했다면, ‘말씀’이신 주님은 반드시 이루어질 하느님 말씀의 씨앗으로 마리아의 태 안에 자리잡지 못하고, 공허한 ‘헛소리’가 되어 한 쪽 귀에서 반대쪽 귀로 흘러나가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납득하기도 힘들었지만 하느님 말씀이기에 일단 수락하였고 마음 안에 머금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이들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분의 능력과 섭리를 경외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분이 하시는 말씀 한 마디도 소홀히 여기거나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겁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입 안에 오래 머금고 많이 씹어야 음식이 지닌 참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마음 안에 오래 머금고 계속해서 곱씹어야 하느님 말씀 안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이신 주님께서 내 안에 태어나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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