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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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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23 조회수146 추천수2 반대(0) 신고

[12월 23일] 루카 1,57-66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사람에게는 ‘이름’이 무엇인지가 참 중요합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름이 곧 운명’(Nomen est omen)이라고 했고,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 하여 음양오행의 법칙과 음운(音韻), 자의(字意), 수리(數理) 등을 다 고려하여 이름을 지어왔습니다. 한편, 사람의 운명은 한 사람과 그가 속한 사회 사이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므로, 이름이 지어져서 불린다는 것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 ‘사회’에 속해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이름이 지닌 ‘사회적 특성'이 서양 문화권에서는 독특한 ‘작명 문화’로 자리잡기도 했지요. 유럽에서는 존경하는 위인, 성인, 혹은 조상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름은 ‘고르는’ 것이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가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 뒤에 ‘주니어’를 붙여서 사용합니다. 자기가 누구의 아들이고 어느 가문 사람인지를 이름 안에서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엘리사벳이 낳은 아들의 할례식에 참석한 친척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지으려 합니다. ‘즈카르야’는 ‘주님께서 기억하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자신들의 노고를 하느님께서 기억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누리는 좋은 것들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은 인간적 바람이 담긴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 붙여주는 행위에는 그 아기에게 ‘즈카르야’라는 사제 가문의 소명이 전해지기를, 그리고 그 소명에 따라오는 영광과 축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겁니다.

 

하지만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그 아기에게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자비하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인간적인 부족함과 물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귀한 아들을 얻게 해주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긴 이름입니다. 인간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그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감히 의심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의지가 담긴 이름입니다. 즈카르야는 가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기 이름을 ‘요한’으로 확정함으로써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라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했고, 그 순명이 그의 과오를 씻는 ‘보속’이 되어 닫혀있던 입이 열리고 묶여 있던 혀가 풀려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즈카르야의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즈카르야가 되지 않고 요한이 됨으로써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규칙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그 분 뜻 안에서 자유롭게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세상의 이름과 하늘의 이름을 동시에 지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나는 두 이름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어느 이름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누구의 손길이 나를 보살필지가 결정될 겁니다. 저는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을 택하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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