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White Christmas, Merry Christmas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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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12-25 | 조회수24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화이트 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신다.”
흡사 오늘 주님 성탄의 기쁨을 내다본 이사야 예언자 말씀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구원자 탄생을 갈망하는 영적 예루살렘이요 주님의 사제인 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입니다. 오늘은 참 기쁜 날,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새벽 눈뜨자 자비의 집 숙소 문을 열었을 때 한눈 가득 들어온 흰눈 가득 덮인 풍경이었습니다. 저절로 터져나온 온누리 모든 분들과 피조물들에게 드리는 인사말입니다.
“White Christmas, Merry Christmas” (화이트 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어제에 이어 오늘 성탄대축일 낮미사 화답송 후렴도 참 흥겹습니다. “땅-끝마다 우리 주의 구원을 모두가 우러러 보았도다.”
어제처럼 오늘 하루도 이 화답송 후렴을 노래하면서 지내려 합니다. 어제의 화답송 후렴은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이었습니다. 정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싶기에 오래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 임종시에도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일거란 어제의 고백을 다시 확인합니다.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어제 대림 제4주일 로마 베드로 광장에서 삼종기도후 교황님 강론 말씀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대로 주님 성탄 대축일 우리 모두를 향한 권고 말씀처럼 들립니다.
“너희 마음들을 하느님의 사랑에 열라, 모두에게 친절을 보여라!”
어제는 난생 처음 잠들었다가 수도형제가 깨주어 밤미사에 가까스로 참석할 수 있었으니 수도생활 41년째 초유의 체험입니다. 평생 벨소리 없이 일어났는데 어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늘 밤 12시쯤 일어나 눈붙이지 않고 하루를 지내다가 저녁에 잠들면 밤 12시후 일어나는 것이 습관화된 까닭에 10:30분 밤미사전에 못 일어난 것 같습니다.
미사중에도 참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순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하루 온힘을 다해 써왔던 산더미처럼 쌓인 강론이 짚더미처럼 참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제 그만 멈출까하는 유혹도 잠시 들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천상체험후 자기가 쓴 모든 글들이 지푸라기 같다는 자괴감에 그 이후로는 글쓰기를 중단했다는 일화도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매일 강론 쓰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표현이자 살아 있음의 표현이요, 사랑 나눔의 기회이니까요. 오늘 역시 일기쓰듯 전개되는 강론입니다. 어제 밤미사시 제2독서 성 레오 대 교황의 강론 노래후 응송이 참 깊고 아름다웠습니다.
“오늘 우리를 위해 참된 평화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늘은 어디서나 꿀을 흘러내리게 하는도다. 오늘은 세상 구원의 날이 되어 옛적부터 마련된 영원한 행복의 날이 빛나는도다.”
주님 성탄 대축일이 아니곤 어디서 이런 행복을 체험할 수 있을런지요! 어제 저녁식사를 앞둔 수도원 식탁 분위기가 흡사 잔치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치날이 사라진 작금의 시대, 성탄 대축일 잔치날이야 말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요 이런 하느님께 25년전 성탄절에 썼던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 시를 오늘 헌시(獻詩)로 하느님께 바칩니다. 수차례 인용했습니다만 늘 새롭고 좋습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언뜻 "난 하느님께 가스라이팅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흰눈 덮인 온누리가 ‘화이트 사일런스(white silence), 하얀 침묵중에 주님 탄생을 축하합니다. 어제 가난한 목자들이 주님 탄생을 체험한 루카복음 내용이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 from below)”을 뜻한다면, 오늘 요한복음의 주님 탄생에 대한 진리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 from above)”을 뜻합니다. 오늘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요약하는 요한복음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히브리서 서간 말씀 역시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을 말합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체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허무도 무지도 탐욕도 아닌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이신 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존엄한 품위의 참나-참사람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이신 주님과의 일치가 아니곤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첫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생명이자 빛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일치가 깊어질수록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생명을 찾는, 빛을 찾는 인간들에게 말씀이신 그리스도만이 그 답입니다. 충만한 생명, 환한 빛속의 삶의 길은 주님뿐이 없습니다. 다음 요한복음의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참생명, 참빛이 우리를 참으로 살게 합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주님의 참빛이요, 텅빈 허무를 텅빈 충만의 생명이 되게 하는 참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참생명이자 참빛이신 주님과의 일치가 명실공히 우리를 참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참으로 영예로운 우리의 신원, 하느님의 자녀됨을 확인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둘째,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일치가 깊어질수록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삶입니다. 요한 사도의 기쁨에 넘친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마느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
새삼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 선물이 바로 오늘 우리 마음의 구유에 탄생하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생명을, 빛을, 길을, 진리를, 은총을 잃어 존엄한 품위를 잃고 방황이요 전락입니다. 구원의 행복은 선택입니다. 오늘 탄생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생명이자 빛이요 진리이자 은총이신 주님을 선택하여 날로 일치를 굳건히 할 때 참나의 실현이요 구원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참으로 존엄한 품위의 진선미의 삶을 살고 싶습니까? 답은 하나 예닮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예닮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이런 주님을 닮아감으로 날로 생명과 빛, 은총과 진리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유일한 존재이유입니다. 이렇게 살라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문득 떠오르는 부활의 봄과 더불어 생각난 “민들레꽃” 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뒤뜰 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민들레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볓처럼 살 수 있겠네”-2001.4.16
아기 예수님 탄생으로 하늘은 땅이 되었고, 주님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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