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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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12-30 | 조회수23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루카 2,36-40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자리에 여 예언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한나’,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하느님을 섬기던 늙은 과부였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녀와 관련된 이름들에 이미 행복의 씨앗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는 이름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녀가 속한 ‘프누엘’이라는 가문 이름은 “하느님은 빛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녀가 몸담고 있는 ‘아세르’라는 지파 이름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비쳐주시는 빛을 따라가며 그분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한껏 받고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요.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습니다. 그 이름들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주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이름에 담긴 뜻이 내 삶 속에서 실현되도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주셔도,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그 은총을 받아 간직할 그릇을 준비하지 않으면 애써 받은 은총들이 다 새어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나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행복한 여인이 아닙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읜 불쌍한 사람입니다. 누구하나 의지할 데 없는 ‘청상과부’라는 딱한 처지로 6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외롭게 살아온 가련한 여인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며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 성전에 머무르면서 단식하고 기도하며 열과 성을 다해 삶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환경과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믿음으로 그 상황을 반전시켜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며 거룩하게 살아갈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편 뒷바라지에 시간을 뺏기고, 세상 일에 대한 걱정에 마음을 뺏겨 하루 하루 정신 없이 살아갔겠지요. 일찍 과부가 된 것은 큰 슬픔이고 불행이었지만, 그 덕에 하느님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나가 누린 행복은 그녀가 처한 조건이나 상황에 휘둘리는 불완전한 찰나의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 뜻에 깊이 뿌리를 내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세상을 구원하실 주님을 자기 두 눈으로 직접 뵙는 ‘지복직관’의 행복으로 완성되었지요.
한나처럼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굳게 믿으며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좋은 뜻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가 그 뜻을 제대로 알아보고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때에 놀라운 방식으로 그분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참된 평화와 행복 속에서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하느님께서 그 때 그렇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라는걸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으신 곳에 섣불리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면, 끝까지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둔다면, 하느님께서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위로로, 걱정을 기회로 바꾸어 주실 겁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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