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예수 수난 제5시간 (오후 9시 - 10시) - 겟세마니의 고뇌 첫째 시간 / 교회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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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병찬 | 작성일2023-12-30 | 조회수8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교회인가)에 대한 기도는 24시간 매시간마다 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도의 효과와 예수님의 약속은 너무나 풍성하며, 이 기도문 아래에 있습니다. 요청시 파일을 보내드립니다.
제5시간 (오후 9시 - 10시) 겟세마니의 고뇌 첫째 시간 준비기도 오, 저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5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깊이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 드는 때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실행한 것처럼 저와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로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고자 하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1 고뇌에 잠겨 계신 제 예수님, 저는 마치 전류가 통하는 것처럼 이 (겟세마니) 동산으로 마음이 끌림을 느낍니다. 제 아픈 마음을 당기는 강력한 자석(처럼) 당신께서 저를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달려가면서, ‘내 안에 느껴지는 이 사랑의 이끌림은 무엇일까? 어쩌면, 박해 당하시는 내 예수님께서 너무도 괴로우신 나머지 나의 동반을 필요로 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고 혼자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날아갑니다. 곧 나는 듯 달려갑니다. 2 그러나, 이럴 수가! 동산에 들어서자 무서움이 엄습합니다. 밤의 어둠, 섬뜩한 냉기, 괴로워하시는 당신께 고통과 슬픔과 죽음을 예고하듯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흔들리는 나뭇잎들, 눈물을 글썽이며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들처럼 빛을 내는 별들……. 이 별들이 저의 배은망덕을 나무랍니다. 저는 떨면서 더듬더듬 당신을 찾습니다. 당신을 부릅니다. 3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저를 부르신 당신께서 어찌하여 모습을 보여 주시지 않으십니까? 부르시고서 왜 숨어 계십니까?” 4 일체가 공포의 대상입니다. 모든 것이 등골이 오싹한 전율을 일으키며 깊은 적막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런데,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헐떡이며 몰아쉬는 가쁜 숨소리가 들립니다. 드디어 당신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비참하도록 달라진 모습이신지! 최후 만찬의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순간은 얼굴이 황홀하도록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이셨건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듯 아름다운 당신이 아니십니다. 죽음에 이르는 극도의 슬픔이 본래의 아름다움을 손상한,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이십니다. 5 벌써 임종 고통이 시작되어 머지않아 숨을 거두실 것처럼 보이니, 다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못 듣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간 슬프지 않습니다. 저는 그러므로 당신의 발을 부둥켜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더 대담하게 당신의 팔까지 올라가며 감싸 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마에 한 손을 얹어, 아래로 떨어뜨리고 계신 고개를 받쳐 드리면서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예수님, 예수님.” 하고 부릅니다. 6 그러자 당신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저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 왔느냐?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짓누르는 가장 큰 슬픔이 모든 사람에게서 완전히 버림받는 것인데, 지금 그 슬픔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기다린 것은 너에게 내 고통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이고, 너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천사를 통해 곧 내게 보내 주실 쓰디쓴 잔을 나와 함께 마시게 하려는 것이다. 7 나와 같이 이 잔을 한 모금씩 마시기로 하자. 그것은 위로의 잔이 아니라 매우 쓴 고통의 잔일 터이니, 나로서는 애정을 가진 몇몇 사람들이 그 몇 방울만이라도 같이 마셔 주기를 바란다. 내가 너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니, 네가 이를 받아들여 나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이리도 슬픈 저버림 속에 나를 홀로 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하려는 것이다.” 8 “아, 예, 그러겠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신 예수님, 저희는 당신의 쓴 잔을 같이 마시고, 당신의 고통을 같이 겪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9 고뇌에 잠기신 당신께서는 그렇게 저의 다짐을 받아 내시자, 단말마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일찍이 눈으로 보거나 느껴 안 적이 없는 고통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참고 볼 수 없어진 저는 당신께 따뜻한 동정심을 표하며 위로를 드리고자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10 “말씀해 주소서. 어찌하여 이 밤, 이 동산에서, 이토록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시며 홀로 계시나이까? 이 밤은 당신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입니다. 몇 시간만 있으면 수난이 시작될 것입니다. 11 저는 적어도 당신 천상 엄마를, 그리고 사랑에 찬 마리아 막달레나와 충실한 사도들을 여기에서 만나리라고 생각했건만, 그 대신 이렇게 홀로 슬픔에 짓눌려 계신 당신만을 뵙고 있습니다. ― 그것도 참혹한 죽음을 겪게 하면서 정작 죽이지는 않는 무자비한 슬픔입니다! 오, 저의 선, 저의 전부시여, 어째서 이런지 대답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제발 말씀 좀 해 주십시오!” 12 그러나 당신은 너무도 큰 슬픔에 눌려 말씀을 하실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 저의 예수님, 빛이 가득하지만, 그렇습니다, 슬픔에 겨운 당신의 눈길은 도움을 청하시는 듯합니다. 당신의 할쑥한 얼굴, 사랑으로 바싹 마른 입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고 있는 거룩하신 몸, 영혼들을 찾아 구하려고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과 그 과도한 노고, 그 때문에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당신 ― 이 모든 것이 당신께서 홀로 계시니 제가 같이 있기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3 오, 예수님, 제가 여기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땅에 쓰러져 계신 모습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당신을 팔로 받쳐 가슴에 품어 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고통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당신 앞에서 저질러지는 죄들도 낱낱이 헤아리고자 합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당신께 위로를 드리고, 보속을 바치며, 적어도 따뜻한 동정심이라도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오, 저의 예수님, 제 팔에 안겨 계시는 동안 당신의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저의 생명이시여, 당신의 혈관 속에서 불이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피가 끓어올라 혈관을 터뜨리며 쏟아지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제 사랑이시여, 대체 무슨 일입니까? 15 채찍도 가시관도 못도 십자가도 보이지 않건만, 당신 가슴에 제 머리를 갖다 대자 잔혹한 가시들이 당신의 머리를 찌르는 것이 느껴지고, 무자비한 채찍이 아주 작은 부분도 빼놓지 않고 당신의 거룩하신 몸 안팎을 온통 후려치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 당신의 두 손이 못 박히셨을 때보다 더 오그라들고 뒤틀려 있습니다. 16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감미로운 선이시여, 당신을 내적으로도 이토록 괴롭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대관절 누구이기에, 그럴 때마다 같은 수의 죽음을 겪곤 하십니까? 17 오, 복되신 당신께서 금방이라도 생명이 꺼질 듯한 입을 열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얘야, 사형 집행자들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냐? ― 이 고통에 비하면, 그들이 내게 끼친 고통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다! ― 그것은 ‘영원한 사랑’이다. 이 영원한 사랑은 무엇에서든지 으뜸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형 집행자들이 점진적으로 내게 줄 고통을 한꺼번에, 그것도 가장 깊고 내적인 부위에 안겨 주는 것이다. 18 아, 얘야, 그것은 모든 것 속에서 언제나 우세한 사랑 ― 나를 압도하면서 내 안에 있는 사랑이다. 내게는 사랑이 못이요 채찍이며 가시관이고, 사랑이 모든 것이다. 사랑이 나의 영구적인 수난인 반면, 사람들로 말미암은 수난은 시간적인 제한이 있는 것이다. 19 아, 얘야,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너라. 와서 내 사랑 안에 녹아들어라. 오로지 내 사랑 안에서라야, 내가 얼마나 엄청난 고난을 받았으며 얼마나 너를 사랑해 왔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네가 나를 사랑하는 법과 오로지 사랑으로 고통 받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20 오, 저의 예수님, 사랑이 당신으로 하여금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하는지를 보여 주시려고 저를 당신 마음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시니 들어가고 있나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사랑의 기적적인 표징들이 보입니다. 당신 머리에는 실제의 가시관이 아니라 불 가시관이 씌워져 있고, 채찍의 끈 부분이 끈이 아니라 불로 되어 있는 불 채찍이 당신의 몸을 후려치고 있으며, 쇠로 된 못이 아니라 불 못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21 모든 것이 불입니다. 불꽃이 뼈까지, 뼛골 속까지 깊이 파고들어 당신의 거룩하신 인성 전체를 불로 만듭니다. 그것이 죽음의 고통을, 수난 그 자체보다 확실히 더 큰 고통을 받으시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모든 얼룩을 씻고 사랑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고자 하는 영혼들에게 사랑의 목욕물을 준비해 줍니다. 22 오, 끝없는 사랑이시여, 이토록 무한한 사랑 앞에서 저는 몸이 흠칫 뒤로 쏠리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사랑 안으로 들어가서 사랑을 이해하려면 저 자신이 온통 사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 저의 예수님, 저는 도무지 그렇질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과 함께 있고 당신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시니, 저로 하여금 온통 사랑이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23 그러므로 간청하오니, 제 머리와 생각들 하나하나에 사랑의 관을 씌워 주십시오. 오, 예수님, 이 애원도 들으시어, 제 영혼과 몸과 힘과 감성과 갈망과 애정을 ― 요컨대 모든 것을, 사랑의 채찍으로 채찍질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모든 것 속에서 사랑의 채찍과 사랑의 날인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오, 끝없는 사랑이시여, 그리하여 사랑에서 생명을 받지 않은 것은 제 안에 도무지 없게 해 주십시오. 24 모든 사랑의 중심이신 예수님, 비오니, 제 손과 발에도 사랑의 못을 박아 주십시오. 그렇게 완전히 사랑에 못 박혀, 저 자신이 사랑이 되고,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을 옷 입듯 입고, 사랑으로 양육되게 하시고, 또한 사랑이 저를 완전히 당신 안에 못 박게 해 주십시오! 오, 예수님, 그리하여 제 안팎의 그 무엇도 사랑으로부터 저를 떼어 내어 딴 것에 정신을 팔게 하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 성찰과 실천 25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원하신 아버지께도 버림받으신 채, 맹렬한 사랑으로 불타고 계셨다. 그 사랑의 불꽃이 얼마나 드센지 상상 가능한 모든 죄들을 살라 없애실 수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상 사람들과 지옥 (상태)에 있는 영혼들 ― 그러나 그들의 죄악을 영구적으로 완강히 고집하지는 않을 영혼들 ― 도 모두 그 불길에 휩싸이게 하실 수 있었다. 26 우리도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님의 온 내면으로, 그분의 가장 깊은 부분, 곧 그분의 불타는 심장 박동 속으로, 역시 불타고 있는 듯한 그분의 지성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이 사랑으로 ― 예수님을 태우는 이 불로 우리 존재의 안팎을 옷 입히자. 27 그런 다음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의 뜻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그들 각자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 주고, 이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어루만져 완전히 사랑으로 변화되도록 힘쓰자. 그리고 예수님의 바람과 심장 박동과 생각으로, 각 사람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형성하자. 28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마음 안에 예수님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예수님을 에워싸게 하면서 이렇게 말씀 드리자. “오, 예수님, 저희는 당신께 위로와 격려를 드리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 안에 계신 같은 수의 예수님들을 당신께 데려왔습니다. 모든 사람을 당신 마음 안으로 데려오는 것 말고는 달리 당신 사랑을 위로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2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께 참된 위로를 드리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태우는 불꽃이 너무나 맹렬해서 그분은 끊임없이 이 말씀을 되풀이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불타고 있는데 내 사랑을 가져가는 사람이 도무지 없구나. 오, 부디 이 불길을 덜어 다오. 내 사랑을 가지고 가서 나를 사랑해 다오!” 30 매사에 예수님과 일치하려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런 점들에 대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과연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이 끊임없이 흘러들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31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계속적인 사랑의 흐름이다. 생각하는 것도 사랑의 흐름이요, 일하는 것도 사랑의 흐름이다. 말하는 것, 심장이 고동치는 것도 사랑이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활동은 사랑으로 하느님께 흘러들고 있는가? 32 예수님께서 그분께로 흘러드는 그분 사랑의 감미로운 매력을 우리 안에서 보실 수 있는가? 이를 보고 너무나 기쁘신 나머지 우리에게 더욱더 풍성한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실 정도인가? 33 만약 우리가 이미 행한 모든 것 속에,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들어가려는 지향을 두지 않았다면, 우리 자신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에 대한 그분 사랑의 감미로운 매력을 잃게 해 드린 데 대하여 그분께 용서를 청해야 할 것이다. 3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를 형성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역사(役事)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지 않겠다고 하는 격이고,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품성을 상실한다. 35 우리가 내적으로 느끼는 모든 것, 곧 영감(靈感), 극기, 은총은 다름 아닌 사랑의 역사들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자유로이 활동하시게 해 드리는가? 혹은, 모든 것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임으로써 신적 활동을 배척하여, 그분께서 아무 일도 못하시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36 우리는 죽은 사람들처럼 그분의 팔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가?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위해서 안배하시는 모든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자 하는가? * * * 37 저의 사랑, 저의 전부시여, 당신의 사랑이 저의 온 존재에 넘쳐흐르게 하시어,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지 다 살라 버리게 하소서. 또한 저의 사랑이 언제나 당신을 향해 흘러들게 하시어, 당신의 마음에 슬픔을 안겨 드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살라 버리게 하소서. 감사기도 사랑하올 저의 예수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부르셨나이다. 그리고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고 대속하시며 고난 받으시고 더없이 감동적이고 힘 있는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나이다. 저도 그 소리를 들으며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려고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을 마땅한 일로 여기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께서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하시고 겪으신 모든 것에 대하여 수없이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심장 박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쓰라린 고통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러므로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 안에서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끊임없이 당신께로 ‘감사’와 ‘찬미’의 강물을 보내게 하시어, 당신의 넘쳐흐르는 축복과 감사의 은총을 저와 모든 이 위에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오, 예수님, 저를 가슴에 꼭 껴안아 주시고, 저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지성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시어, 오로지 당신을 향한 찬미가만이 제게서 끊임없이 솟아나게 해 주소서. *~*~*~*~*~*~*~*~*~*~*~*~*~*~*~*~*~* '수난의 시간들'의 기도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다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최초로 출판한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글이다. 성인은 이 글을 그 자신이 출판한 책의 ‘머리말’ 속에 게재했거니와, 우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바치는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등에 대한 것이다.(역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 주고, 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 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으로 공경하고,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 그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제7권 63장, 1906년 11월 9일) 2 … 내가 내 자애로우신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도 여기에 덧붙여 보면 이렇다.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는 내 수난에 대한 묵상을 그치신 적이 없었다. 이 거듭된 묵상에 의해서 그분 전체가 완전히 나로 충만하셨다. 내 수난을 거듭 생각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묵상에 의해서 나로 충만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제11권 49장, 1913년 3월 24일) 3 “딸아, 내 수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샘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샘도 더욱 확장된다. 그리고 샘솟는 물이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쓰이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의 샘도 그 사람 자신의 선익과 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쓰인다.”… “딸아, 네가 이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나는 이를 너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마치 내가 수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공로와 같은 공로를 준다. 이와 같이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게도 그 지향에 따라 같은 효과를 거두게 하겠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해 주리니, 내가 이보다 더 큰 상급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그들이 내 ‘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한 횟수만큼 사랑과 기쁨의 불화살을 쏘면서 내 앞에 자리하게 하겠고 그들 역시 내게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복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달콤한 황홀이 될 것이다!” (제11권 51장, 1913년 4월 10일) 4 (교회에는)… 대사(大赦)가… 붙어 있는 기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 기도에는 그것이 없으니 이를 바치는 이들은 얻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며 의아해하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매우 다정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대사가 붙어 있는 기도를 바침으로서 사람들은 하나의 대사를 얻는다. 그 반면에, 내 ‘수난의 시간들’은 바로 나 자신의 기도요 보속이며 온통 사랑이기 때문에 내 성심 깊은 데서 솟아난다. 내가 너와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치면서 얼마나 여러 번 세상에 내릴 징벌을 은총으로 바꾸곤 했는지, 너 혹시 잊어버린 것 아니냐? 그토록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기도인 만큼, 나는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에게 하나의 대사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도록 무한한 가치의 부를 지닌 한 움큼의 사랑을 준다.” (제11권 59장, 1913년 9월 6일) 5 『수난의 시간들』을 쓰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복된 '수난의 시간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이 내게는 기막힌 희생이다. 특히, 오직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어떤 내적 행위들은 글로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이 희생에 대해서 그분께서는 내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미롭고 다정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딸아, ‘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 네가 쓴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한 번의 입맞춤 ― 한 영혼을 네게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서, “제 사랑이시여, 그건 제게 주실 상급이겠지요? 하지만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이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나 자신의 뜻으로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 또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의지 안에 숨어들게 된다. 따라서 활동은 나의 의지가 하게 되므로 단 하나의 낱말로도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네가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게 할 작정이다.”… “이 ‘시간들’은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기도이다. 내가 지상생활 동안 행했던 일과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거기서 나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듣게 된다.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 모든 이의 선익을 갈망하며 모든 이를 위하여 보속하고 있는 나의 뜻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그 영혼이 행하고 있는 바를 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기 위하여 그에게로 거처를 옮기는 나 자신을 느낀다. 오, 도시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친다면 내 마음에 참으로 큰 기쁨이 일 것이다! 도시마다 나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몹시 분노하고 있는 나의 정의가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여움을 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보면, 어느 날 나는 천상 엄마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 (곧 ‘제24시간’) 기도를 바치면서 극심한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를 동정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묵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간혹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네가 그것을 빠뜨리지 않기 바란다. 내 엄마를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내 엄마는 몸소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삶을 다시 살고 계시는 것처럼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지상 생활 동안 내게 주신 영광과 사랑을 받으시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엄마가 다시 세상에 계시면서 어머니다우신 자상함과 사랑과 모든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나는 너를 어머니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면서 아주 부드럽게 “내 엄마, 엄마.” 하셨고, 또한 자애로우신 엄마께서 이 ‘시간’에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을 내게 속삭여 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따라 함께 하였다. 그때부터 예수님 은총의 도움으로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제11권 79장, 1914년 10월 ○일) 6 … “딸아, 네가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네가 알면 참 좋겠다. 게다가 너도 늘 이 기도를 반복하다보면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내 성인들은 내 수난을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을 받았는지를 깨달았고, 너무나 측은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으며, 내 고통에 대한 사랑으로 온 몸이 불타는 듯한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기도처럼 순서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야말로 내 생애와 내가 겪은 것의 편린(片鱗)들을 시시각각 너 자신 안에 보존함으로써 이리도 크고 특별한 기쁨을 내게 주는 첫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너에게 나는 매우 강하게 끌림을 느끼기에 시시각각 그것을 음식으로 주고, 같은 음식을 너와 함께 먹으며, 네가 하는 일을 함께 한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새로운 빛과 새로운 은총으로 풍부하게 보답해 주리라는 점도 알아 두어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땅에서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바칠 때마다, 내가 하늘에 있는 너를 늘 새로운 빛과 영광으로 옷 입혀 줄 작정이다.” (제11권 81장, 1914년 11월 4일) 7 늘 하듯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 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그런데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행하고 있는 영혼들과 접촉하면 못들이 뽑혀지고 가시들이 흩어져 사라지며 상처들이 아물고 침이 다 닦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저지르는 악이 선으로 보상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들과의 접촉이 나를 해치기는커녕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수난의 시간들’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욱더 의지하게 된다.” 이 밖에도 복되신 예수님은 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하여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이 ‘시간들’을 실행하면 나의 생각과 보속과 기도와 열망과 애정을, 심지어 내 가장 내적인 기질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나와 같은 사명을 수행한다. 공동 구속자로서, 나와 함께, ‘하느님, 당신 뜻을 이루려고 제가 왔으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Ecce ego, mitte me).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당신께 보상하며 응답하고,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하고 말한다.” (제11권 82장, 1914년 11월 6일) 8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온통 빛에 휩싸여 나타나셨다. 이 빛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매혹적이고 황홀한 모습이 되도록 그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놀라움에 잠긴 나에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겪은 아픔마다, 흘린 피 방울방울마다, 각각의 상처마다, 기도와 말과 행위와 발걸음 등등마다 내 인성 안에 빛을 낳았으니, 이 빛이 천상의 모든 복된 이들을 황홀하게 할 정도로 나를 아름답게 꾸몄다. 이제는 영혼이 내 수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며 보속과 또 다른 행위들을 할 때마다, 내 인성으로부터 빛을 끌어내어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미화된다. 그러므로 내 수난에 대한 생각을 하나 더할 때마다 그것이 그에게 영원한 기쁨을 가져올 또 하나의 빛이 된다.” (제11권 121장, 1916년 4월 23일) 9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내 인성을 수행하면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모아들였다. 즉, 나의 발걸음과 활동과 말을, 심지어 나의 탄식과 고통과 내 핏방울들을 요컨대 모든 것을 다 모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호할 책임을 맡고 나를 흠숭하며 내 모든 지시에 따르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들이었으니,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가져가려고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지금도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내 생애와 내 수난과 내 피와 내 상처와 내 기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그 사람 주위를 에워싸러 온다. 그의 말과 기도, 나에 대한 동정심, 그의 눈물과 예물을 모아서 나의 것들과 합하여 내 어좌 앞으로 가져옴으로써 나 자신이 지상에서 보낸 생애의 영광을 새로이 하려는 것이다. 이 천사들은 매우 큰 기쁨에 싸여 그 사람의 기도소리를 들으려고 공손하게 기다리며 함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들’을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여 경건하게 기도해야 한다. 천사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그의 입술에 주의를 쏟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 ‘시간들’은 사람들에게서 쓰디쓴 괴로움을 많이도 받고 있는 나에게 달콤한 음료 몇 모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받는 저 쓰디쓴 물의 엄청난 양에 비하면 이 단물은 너무나 적다. 그러니까 이 기도를 더 널리 전파해야 한다. 더 널리!” (제11권 132장,1916년 10월 13일) 10 “… 나는 네가 내 고통과 내 기도와 나 자신 전체를 네 것으로 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네 안에서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대에는 크나큰 보상이 요구되는데, 나를 자기 자신으로 삼은 사람만이 그것을 내게 줄 수 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보신 것, 곧 영광과 기쁨과 사랑과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한 전적이고 완전한 보상을 이 영혼들 안에서도 보고 싶다. 나와 엇비슷한, 같은 수의 다른 예수들을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수난의 시간들’ 중 매시간 기도를 바칠 때마다 각각의 행위와 모든 것 속에서 이 지향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보상을 얻지 못한다면, 아, 이 세상은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징벌에 징벌이 억수 같이 쏟아질 테니 말이다. 아아, 딸아! 딸아!” (제11권 138장, 1916년 12월 9일) 1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음을 알았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피를 뚝뚝 흘리시며 끔찍한 가시관을 쓰고 계셨다. 눈을 찌르는 가시들 사이로 간신히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딸아, 이 세상이 마음의 평형을 잃게 된 것은 내 수난에 대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비추어 줄 내 수난의 빛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 빛을 찾아내었더라면 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를 알려 주었을 것이니, 세상이 자기를 참으로 사랑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내 수난의 빛이 세상을 인도하면서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었을 것이다. 나약함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떠받쳐 주었을 내 수난의 힘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참을성 없음 속에서, 세상은 자기에게 평온과 고요한 자기 포기의 정신을 불어넣었을 내 참을성의 모범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찾아내었더라면 내 참을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 지배를 마땅한 의무로 여겼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세상은 고통을 지탱해 주며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었을 하느님 고통의 위로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죄 속에서, 세상은 그것과 마주 서서 그 안에 죄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었을 나의 거룩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아! 인간은 이렇듯 모든 것을 악용했다. 모든 것 속에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이 평형을 잃은 것이다…” (제11권 143장, 1917년 2월 2일) 12 …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다. 연옥 영혼들과 성인들로 보이는 많은 영혼들 가운데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말을 걸면서 얼마 전에 죽은, 내가 아는 한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이 ‘수난의 시간들’의 날인을 지니지 않고 연옥에 들어오는 영혼이 하나도 없음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혼들이 이 ‘시간들’의 호위와 도움을 받으며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또한 이 ‘수난의 시간들’의 동반을 받지 않고 천국으로 날아드는 영혼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간들’은 천국에서 땅으로, 또 연옥과 하늘에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이슬이랍니다.” … 나중에 나 자신 안으로 돌아오자 다정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것이 사실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이 ‘시간들’은 우주의 질서이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조화롭게 하고, 나로 하여금 세상을 멸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피와 상처와 사랑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두루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할 때에 나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나의 피와 상처와 열망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곧 내 생명이 거듭 재현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사람이 어찌 모든 선을 얻어 낼 수 있겠느냐? 네가 의아해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이 일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너는 유한하고 나약한 도구 노릇을 해 왔을 뿐이다.” (제12권 10장, 1917년 5월 16일) 13 내가 어떤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서 임종 중인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왜 걱정하고 있느냐? 내 수난에 대한 낱말마다, 각각의 생각과 연민과 보속 및 내 고통에 대한 기억마다, 그 모든 것이 나와 이 영혼 사이에 열리는 통신 전선들이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그것이 그만큼 많은 수의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그녀를 단장한다는 것을? 이 영혼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천했으니, 나는 내 피를 옷처럼 입혀 주고 내 상처로 단장하여 내 수난의 딸로 받아들이겠다. 이 꽃은 너의 마음 안에서 자라난 꽃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를 축복하여,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꽃으로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내 가슴에서 꽃 한 송이가 나와서 그분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제12권 55장, 1918년 7월 12일) 14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내 수난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겪은 것을 기억하거나 나를 측은히 여길 때마다, 내 고통이 그 영혼에게 새로이 적용된다. 내 피가 솟아나서 그를 잠그고, 내 상처들이 그를 치유하거나 단장한다. 그가 상처를 입고 있으면 치유해 주고 건강하면 아름답게 단장해 주는 것이니, 내 모든 공로가 그를 부유하게 한다. 그러니까 영혼은 매우 놀라운 장사를 하는 셈이다. 내가 행했고 겪었던 모든 것을 판매대에 놓아 이윤을 갑절로 남기니 말이다. 사실,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은, 태양이 지구에 빛과 열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베풀어지고 있다. 나의 업적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원할 때마다 내 생명의 열매를 받는다. 그러므로 내 수난을 스무 번, 백 번, 천 번 기억하면, 그만큼 더 많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내 수난의 모든 선익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영혼들과 소경과 귀머거리와 다리를 절고 있는 이들을 민망스럽도록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수난이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고통과 상처와 피는 허약함을 없애는 힘이요, 소경에게 시력을 주는 빛이며, 혀를 풀고 청각을 열어 주는 혀이고, 다리를 절고 있는 이들을 똑바로 걷게 하는 수단이며,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생명이다. 온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제가 내 생애와 수난 안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약을 무시하고 이 치료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구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치의 폐병에 걸리기나 한 듯 죽어 가는 인간의 처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비통하게 하는 것은, 교의나 신학 이론이나 역사 따위의 탐구에 매진하는 교인들이 정작 내 수난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수난은 번번이 교회에서 쫓겨나고, 사제들의 입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사제들의 말에 빛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니, 그들의 말을 들은 이들은 전보다 더 굶주린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제13권 26장, 1921년 10월 21일) 15 … “딸아, 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매우 내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 혼자 고통을 겪지 않고, 피조물이 ― 내 고통의 원인이며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에, 고통이 내게 더욱 감미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홀로 외롭게 고통을 겪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홀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내 고통을 맡길 사람도, 이 고통이 지닌 열매를 줄 사람도 없어서, 고통과 사랑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사랑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질 때 너에게 온다. 네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네가 나와 함께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인 것으로 겪으면서 내가 내 인성으로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의 수난을 현행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다만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먼젓번 것은 내 고통을 거듭 겪고자 나를 대신하는 내 생명의 행위이기에, 내가 신적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돌려받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나로 하여금 피조물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데, 너는 아느냐? 내가 어떤 사람 안에서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바로 내 뜻을 생명의 중심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안에서다. 나의 뜻만이 연속적인 행위들이 뒤따르지 않는 단일한 행위이다. 이 단일한 행위는 결코 변동이 없는 하나의 점에 고정된 듯 있고, 그 점은 곧 영원이다. 그러니 단일하면서도 원초적이고 끝없는 행위이다. 그 둘레가 무한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만물과 만인을 단 하나의 포옹으로 싸안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는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사업이 단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일한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들을 오직 하나의 행위인 것처럼 그 자신의 것으로 삼을 능력이 있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그 단일한 행위의 소유자이다. 그러니 내 수난 고통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동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18권 9장, 1925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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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장한상요셉과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저의 죽은 형제들, 곽판수와 박일조 마리아, 한재권, 곽무순, 양판영 부부, 양길영 부부, 양호영,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미카엘의 믿음의 배필, 후손들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자비와 은총과 축복과 용서를 베푸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8월 15일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뜻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뜻 축일'을 이루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암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고통을 봉헌하며,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전쟁에서 죽거나 고통당한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이들의 영혼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구원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예수님의 뜻 안에서 안토니오 비오가 봉헌하는 미사와 기도와 바램에 축복과 구원과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예수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느님! 온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찬미 흠숭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 십자가 동산/길이 생겨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게 하소서. 예수님, 저는 예수님 뜻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2023년에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이 온 세상에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피앗 볼룬타스 투아! 2023.03.26. 번역할 영어책 받음. 송 요아킴 & 문 그레고리오 2023.04.25. garabandaltv 2023.06.28. 영어책 번역 1차 완성 2023.07.18. 영어책 번역 2차 완성, 보냄. 2023.08.11. 할아버지!
2023.09.05. pa 오전 10시 마지막 미사. 2023.11.19. 청송성당 미사와 식사. 2023.11.19. pa로부터 번역할 파일 받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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