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덕이 넘치는 성가정을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 | |||
---|---|---|---|---|
이전글 | ■ 내 삶 끝나는 그날까지 / 따뜻한 하루[278] |1| | |||
다음글 |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루카2,21-39) |1|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12-31 | 조회수15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덕이 넘치는 성가정을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루카 2,22-40)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이 날이 정해질 때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최근에는 ‘성탄 팔일 축제’ 내의 주일로 옮겼다. 만약 이 기간 안에 주일이 없을 경우는 12월 30일에 지낸다. 또한 이 날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것들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온단다. 붕괴된 가정, 사랑이 없는 가정, 믿음이 없는 세상이 드러난다. 이렇게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면, 무엇보다도 가정을 지켜 주고 복원하고 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희망과 소망과 믿음은 오로지 가정에서 올 것이니까. 공동체의 최소인 각 가정의 평화는 참으로 중요할 게다. 마리아와 요셉은 나자렛으로 돌아와 아기 예수를 잘 돌보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면서 천사가 일러 준 그대로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또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 율법에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 율법에서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들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또 그들은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이처럼 성경에서의 ‘성가정’은 예수님과 성모님과 성 요셉이 이루신 가정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과 성 요셉에게 순종하셨다. 인류의 구세주께서 지상 순례 중에 부모에게 순종하시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다. 사실 성가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계신다. 이렇게 성가정 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은 외적이 아닌, 가족으로 생겨난 하느님과의 결합일 게다. 사실 가족이라는 운명으로 엮인 가정 안에는 하느님 뜻이 새겨있다. 남편을 일찍 잃고 평생을 과부로 혼자 산 한나도, 아이가 없어 평생 멸시받아온 즈카르야와 엘리사벳도, 부부 아닌 부부의 운명을 살았던 마리아와 요셉도, 세상눈으로야 다 결손가정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어진 운명에서 주님 뜻 헤아리며 자신들의 길에 충실했다. 그리하여 삶에 부대끼는 ‘에로스’를 ‘아가페’로 승화시켜 자신들만의 삶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게 했을 게다. 이것이 바로 성가정이리라. 이처럼 그분들은 하느님 뜻에서 해결을 찾았다. 언제나 주님 뜻을 공통분모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을 게다. 이게 성가정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리라. 그들은 그렇게 성가정을 만드셨던 거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 예수님, 이 세 분께서 이루신 가정이기에 ‘성가정’이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성가정 일원답게 사신다면 성가정이라 한다. 그러기에 갈등 속에서도 주님 뜻을 찾으려 노력하면, 그 가정은 성가정이 된다. 우리도 나자렛 성가정의 ‘지혜와 힘’을 얻도록 하자. 어느 가족이라도 예수님을 가족의 일원으로 모시는 가정은 분명히 성가정을 본받는 가족이다. 또 구성원이 구원 사업에 모두 함께 참여하는 가정도 물론 성가정이다. 이렇게 성가정 안에는 온갖 덕이 넘친다. 각 가정에 겸손과 온유의 삶, 인내와 용서의 삶이 지속된다면, 그들도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나자렛 성가정의 은총으로 우리도 구원의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