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요한 1, 19 - 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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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1-01 | 조회수23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당신은 누구요?” (1,19) 흔히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을 얻고 옳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만 성경에도 아주 의미롭고 심오한 질문이 많이 있습니다. 아담을 향한 하느님의 “너 어디에 있느냐?” (창3,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태16,15)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21,16)라는 질문은 단지 한 개인에게 던진 질문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향한 질문이며, 이 질문에 우리 각자는 필히 지체하지 않고 즉시 대답해야 합니다. 사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양들을 치면서도 줄곧 자기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1,19) 옛날 로마 제국 시절,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전한 개선장군들이 로마로 입성하면 백성들이 모두 몰려나와 연도에 늘어서서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때 로마로 입성하는 장군들은 노예 한 명을 마차 뒤에 숨겨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 즉, 백성들이 환호할 때마다 장군의 뒤에서 그 노예는 ‘너는 신이 아니다! 신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역할을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는 참으로 지혜로운 처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사무엘서에 보면,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백성들이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1사18,7)라고 노래하자 사울 왕이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로마 장군들은 스스로 삼가 조심하였다고 봅니다. 어쩌면 겸손과 섬김의 자세를 갖춘 세례자 요한은 변덕스런 사람들과 세상인심을 간파하고 터득했기에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았기에 사람들의 당신은 누구요?, 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그 예언자도 아니다.” (1,19~21참조) 고 답변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이전에 우리가 또한 누군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욱 요한복음에서, 세 번의 부정 ‘나는 ~이 아니다.’ 는 형식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에 반해 예수님께서는 ‘나는 ~ 이다.’라고 반복해서 표현하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신원이나 정체성을 확언하는 표현입니다. 즉 그분께서 ‘에고 에이미 즉, 나는 ~~이다.’라고 할 때 이는 곧 그분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분의 전 존재를 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반복해서 당신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살아있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포도나무이다.’, ‘나는 문이다.’, ‘나는 목자이다.’,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등등. 그러기에, 요한 세례자가 말하는 ‘나는 ~이 아니다.’는 고백은 요한의 겸손함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신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요한은 분명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신과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과의 차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이나 신분이나 역할을 착각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솔하게 밝힐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그리고 엘리야도 그 예언자 곧 모세(신18,18)도 아니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물론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었지만, 엘리야와 같은 역할, 백성들의 회개를 위해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가 확신한 자신의 정체성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1,23)고 고백하며, 그 정체성에서부터 자신의 소명이란 바로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네가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하라.”는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말처럼, 요한은 진정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았고 하느님 안에서 참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던 참된 인간이었으며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오늘뿐만 아니라 올 한 해 동안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할 우리의 영적 안내자이자 길잡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또한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세례자 요한처럼, ‘나는 ~이 아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우리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 교만의 선을 넘어서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도 세례자 요한처럼, 진리가 아니며 다만 진리를 증언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식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안에 굳건히 머묾을 통해서 하느님의 진리를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배운 바를 삶으로 실천하는 올 한해가 되도록 합시다. 사실 우리가 누구인가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요한이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1,26) 고 증언한 대로 이미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마음을 모으면서 올 한 해의 마지막 날까지 항구하게 걸어가도록 합시다. ‘그리스도 이미 오셨고, 내 앞에 계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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