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공현 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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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03 | 조회수27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주님 공현 전 수요일] 요한 1,29-34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나는 다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뜻대로 절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버리기로 했습니다. 내 삶을 결정하는 더 높은 힘이 필요함을 알았습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떠한 도움도 받으려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저는 무신론자이지만 나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어보려 했고 그러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존재가 하느님인지 아니면 다른 신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이후로 7년 동안 술을 끊고 지내는 데 도움을 준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건 압니다. 그리고 그 존재를 공경하면서 두려워합니다.]
알콜 중독자 모임에 꾸준히 나가면서 알콜 의존증을 극복하게 된 어떤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는 그 모임에 꾸준히 나가면서 증세가 어느 정도 개선되자, 굳이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충분히 알콜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하여 그 모임에 나가는걸 중단했습니다. 그러다 상태가 더 악화되자 혼자 힘으로 술을 끊을 수 있다는 고집을 꺾고 다시 모임에 돌아가 금주에 성공하지요. 그럴 수 있었던 힘을 그는 ‘믿음’에서 찾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자기보다 더 크고 강한 능력을 지닌 존재가 있으며 그가 자신이 알콜 의존증을 극복하도록 도와줄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 후, 혼자 힘으로는 하지 못했던 금주를 무려 7년 동안이나 실천하게 됩니다. 믿음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도 그런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부족하고 약한 자기 혼자서는 그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칠 뿐,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도 그들을 구원할 수도 없지만, 우리를 위해 기꺼이 당신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오시면, 인간들 각자가 저지른 개인적인 죄는 물론이고, 인간들의 욕망과 집착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악’까지 없애실 수 있다고 믿은 겁니다. 여기서 ‘없애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치워버리다’는 표면적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 단어의 근본적 의미는 ‘짊어지다’입니다. ‘파스카 어린 양’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졌듯,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주님께서 인간 각자의 죄,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세상의 온갖 부정과 불의를 당신 어깨에 대신 짊어지심으로써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시고 구원하신다는 뜻이지요.
그 과정은 주님을 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려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그분을 마주보는 겁니다. 서로를 마주보는 애정어린 시선은 하느님과 내가 서로를 닮아가게 만들지요.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바라보며 자연스레 상대방을 닮아가니까요. 완전한 선, 사랑 그 자체이시며 진리이신 분께서 우리의 부족하고 나약한 육신을 취하시어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희생, 은총과 자비에 힘 입어 조금씩 그분처럼 변해갑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참된 사랑 안에서, 완전한 일치로 완성되지요. 그것이 우리가 바라고 희망하는 ‘구원’의 본질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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