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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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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04 조회수30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4년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목요일

에픽테토스의 ‘담론’을 보면,

이런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행복과 자유를 얻으려면 한 가지

원칙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건 바로 세상에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통제 불가능한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중에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요?

에픽테토스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면 비참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과거에 연연하시는 분을 종종 봅니다.

‘그때 그것을 했더라면.

그때 그것을 하지 않았다면….’

등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타임머신이 없는 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즉, 과거는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어떨까요?

후회로 인해 지금이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통제할 수 있음에도

‘할 수 없다’라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남이 대신해 주길 바랍니다.

이 역시 비참해지는 삶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는

‘평온을 비는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하느님, 제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소서.”

우리도 이 평정심과 용기 그리고

지혜를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삶이 비참한 삶이 아닌

행복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뒤따라오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고 계신 곳을 묻지요.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어디에 사시고

어떤 음식을 드시며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지 알고 싶다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스승이었던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신 분,

그분을 알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소개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와서 보아라.”(요한 1,39)

주님을 아는 것은 주님이 직접

해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주님을 찾아가고,

주님과 함께 살면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리더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그 길을 가고, 또한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존 맥스웰)

사진설명:

도메니키노, '안드레아와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요한 세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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