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진실로 예수님 안에 머무는 우리인지 / 1월 4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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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1-04 | 조회수15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진실로 예수님 안에 머무는 우리인지 / 1월 4일, 주님 공현 전 목요일(요한 1,35-42) 믿음은 어떻게 생길까? 흔히들 여자는 남편을, 남자는 아주 유명인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다나. 어쩌면 이는 단지 남녀의 활동 차이로, 여자보다 남자의 시야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리라. 아무튼 남녀 간의 다소간 차이는 있을지언정 믿는 이가 있다는 증거다. 이런 믿음의 대상은 자주 만남에서 정해질 게다. 대뜸 첫 만남에서보다 자주 만나다보니 앎이 되어 정해지리라. 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시는 걸 보고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의 제자는 그 말에 예수님을 따랐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묻자, 그들이 “스승님, 어디에 묵으십니까?” 하고 답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에서 함께 묵었다. 아무튼 그들은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셈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하고 다정히 물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 당신 계신 곳을 알고 싶단다. 요한 스승의 소개로 예수님을 알게 된 그들은 그분에 대해 다소 알고자 했다. 어디에 사시면서, 어떤 삶을 지내시는지를? 우리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고자 할 때,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자 했다. 우리가 성경공부 하거나 봉사하는 것도 그 같은 이유이리라. 그것도 모자라, 그분 축복까지 받으려 성당에 간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라며 물으신다. 과연 그 물음에 우리는 준비된 답을 가지고는 있을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받았다. 믿음으로써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더군다나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오늘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도 그분께서는 생명의 나라로 초대하신다. 우리에게 이런 구원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믿는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을 만나고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라.”고 하시지 않고 “와서 보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그들은 그분과 함께 묵었다. 그렇게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어떻게 사시는지 초대하셨다. 당신을 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정하라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초대에 응해 그분 사시는 곳에서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슴으로 느꼈으리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초대를 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와 함께하겠다.”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먼저 당신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분 안에 머물러야, 그분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게 될 게다.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 때, 우리는 그분을 따를 수 있으리라. 아니 그분 뜻에 따라 살 수 있을 게다. 그분 안에 머물지 않고서는 우리 생각과 말, 행동이 열매 맺을 수 없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닮는 것’이리라. 가끔 신자 아닌 이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느낌을 듣는다. “역시 신자답군요.” 라는 말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도 사실 별수 없군요.” 라는 말에는, 차마 얼굴조차 들 수가 없다. 이처럼 신자인데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냈을 수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는 새로운 이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 안에 머무르면서 늘 스스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운 이’로 이웃에게 축복주고 기쁨을 주는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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