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말씀에 더 가까이 가는 삶을 / 1월 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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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1-05 | 조회수24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말씀에 더 가까이 가는 삶을 / 1월 5일(요한 1,43-5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만나시자 “나를 따라라.”하고 이르셨다. 이어 그는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예언자들이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그곳에서 좋은 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는 그에게 “와서 보시오.”라고 일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저자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그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물으니, 그분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라며 일렀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만나시자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예수님 말씀에 바로 따른다. 그리고 친구인 나타나엘을 그분께 인도한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이다. 둘은 우정이 깊은 사이였나 보다. 그래서 그는 친구 나타나엘에게 “와서 봐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와 또 다른 세례자 요한의 제자에게 이미 했던 말이다. 필립보는 같은 고향 출신인 안드레아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미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그분만은‘ 꼭 만나라나. 그러면 의당 그분을 따를 거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너야말로 참 이스라엘인이며,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너가 필립보와 만나기 전에 이미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알고 계셨단다. 예수님 당시에 라삐들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 공부에 전념하곤 하였다. 이로 보아 그는 예수님께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 곧 메시아임을 알아보았을 게다. 이렇게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다. 이렇듯 필립보와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참모습을 볼 줄 아는 이들이었다. 이리하여 필립보는 예수님 부르심에 바로 따랐고,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뵙고는, 즉시 그 누구도 감히 드러내기가 두려운 ’신앙 고백‘을 했다. 나자렛에서는 메시아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에게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고백일 수도. 그렇지만 나타니엘은 성경에 대해 나름으로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것을, 예수님 말씀으로도 알 것만 같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그렇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야 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상대방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내 형제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힘이란다. 그래서 신앙인은 말과 혀보다는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혹시 미워하고 있는 이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내가 고통에서 용서와 자비를 깨닫지 못하며 사는 게 아닌지를 되돌아보자. 이렇게 필립보와 나타나엘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면 이 두 분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건 평소 그들이 하느님 말씀을 탐구하였기 때문이리라.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 말씀을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거고, 그리스도를 모르면 신앙을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 신앙이 맹목적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평소 말씀을 가까이해야 할게다. 그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오로지 그 들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진정한 그분 만남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일 게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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