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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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1-05 | 조회수536 | 추천수4 | 반대(0) |
1984년 겨울에 저는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나환자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낮에는 나환자 마을에서 양계와 양돈 일을 도와주고, 밤에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학생들 중에는 수도자가 된 친구도 있고, 간호사가 된 친구도 있고, 사업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지난 12월입니다. 수도자가 된 친구가 문자하였습니다. 조카가 뉴욕에 가는데 성탄 미사에 참례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온 조카는 12월 23일 친구와 함께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왔습니다. 그 학생의 아빠가 중학생 때 만났으니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조카는 성탄 미사를 함께 하였고, 친구와 함께 떠났습니다. 4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참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생인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학생은 수도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웃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신학생이었던 저는 어느덧 서품 33년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연탄을 갈아 주던 학생이 생각납니다. 유정 란을 문 앞에 놓고 갔던 학생도 생각납니다. 눈 덮인 산을 올랐던 생각도 납니다. 모두가 잘 자라 주어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교회의 역사 안에서 공의회와 교부들이 고백했고, 선포했던 ‘그리스도론’을 나누고 싶습니다. “교회사의 처음 5백 년 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이라는 신앙을 언어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단적 주장의 출현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공의회의 개최가 반복되었습니다. 1. 아리우스 이단과 니체아 공의회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는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을 근거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갔습니다. 플라톤 철학에 따르면 최고의 유일자(唯一者)인 신은 근접할 수 없는 초월성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인식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참된 신은 근접할 수 없는 초월성을 지녀야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살면서 희로애락을 느낀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보다 낮은 신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에 무로부터 창조되었고, 그러므로 하느님 아버지와 영원하거나 그분과 같은 본질을 지닐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리우스의 이설에 대처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의 지역 시노드가 열렸는데, 두 시노드는 아리우스를 편들었고, 한 시노드는 그를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분쟁으로 인해서 자신의 제국의 일치가 깨질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325년 소아시아의 도시 니체아에서 제국 공의회를 소집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보편 공의회로 간주됩니다. 황제가 의장이 되었고 대부분 동방의 그리스 지역에서 온 300여명의 주교들이 참석하여 아리우스의 주장을 단죄하면서 니체아 신경을 확정하였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아들을 믿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곧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낳음을 받으신 외아드님이시며 하느님으로부터의 하느님, 빛으로부터의 빛, 참 하느님으로부터의 참 하느님이시요, 낳음을 받으셨지 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부와는 동일본질(homoousios)이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 위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 구원을 위하여 내려 오사 살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2. 네스토리우스와 에페소 공의회 니체아 공의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인정하였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좀 느슨하게 보았습니다. 그는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인성을 약화시키는 것에 반대해서 그리스도가 영혼과 육신을 갖춘 참된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마리아에게 부여하던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고수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신성을 낳은 것이 아니라 신성과 결합된 인간을 낳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예수의 온전한 인성을 구하기 위해서 인성을 신성에서 분리시켰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로는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전해 듣고 즉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치릴로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한 위격으로 풀릴 수 없이 일치되었다’는 견해를 내세웠습니다. 예컨대 불붙은 연탄에 있어서 연탄과 불은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치릴로에 따르면 마리아께서 비록 예수의 인성만 낳으셨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한 위격으로 결합된 까닭에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양대 신학파가 대립하자 에페소에서 공의회(431년)가 소집되어서 ‘거룩한 동정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오시어 육신을 취하신 말씀을 육적으로 낳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를 진실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3. 단성론과 칼체돈 공의회 네스토리우스의 우려는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었음이 사실로 드러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한 수도원의 원장인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서 인성을 너무 약화시켰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마치 바다로 떨어지는 꿀방울이 바다에서 녹아버리듯’ 신성에 의해 완전히 흡수될 정도로 그렇게 신성과 인성이 혼합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이 거부되고 폐기되었습니다. 이를 단성설單性說이라고 합니다. 에우티케스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자 451년 칼체돈에서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으로서 ‘하나이요 동일한 그리스도는 본성이 둘이면서도 뒤섞이거나 뒤바뀌거나 나뉘거나 갈라지지 않는 분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 일치를 빙자하여 본성들의 구별을 치워 없애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두 본성의 저마다의 고유성을 고스란히 보전해야 합니다. 이 두 본성은 한 인격과 한 위격 안에 모여옵니다.’ 이렇게 해서 정통 교리가 확립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느님이며 참으로 인간으로서, 신성과 인성은 혼합됨이 없이 존립합니다.(단성론에 반대해서). 그러나 양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신적인 위격 안에 서로 풀릴 수 없이 결합되어 있습니다.(네스토리우스에 반대해서)”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공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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