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별을 바라보라!” (Respice Stellam!)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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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1-07 | 조회수334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더불어(together) 희망의 순례 여정-
“하느님, 만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 “알렐루야-,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동에서 그의 별을 보고 주를 조배하러 왔도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은 복음전 화답송 후렴과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을 하루종일 노래기도로 바치며 지내려 합니다. 오늘 복음의 동방박사들은 아버지의 집을 향해 평생 내적 순례여정중인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2024.1.7.일 주님 공현 대축일, 밤12시 기상하여 자비의 집 숙소 문을 여니 한 눈 가득 들어오는 흰눈 덮인 대지에 푸른밤 하늘에 선명히 빛나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었습니다. 요즘 잠깨면 맨먼저 찾는 북두칠성입니다. 별을 보고 시작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에 문득 떠오른 오래전 써놓고 애송했던 “별”이란 시였습니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병(病)이된다 하지만
당신 향한 내 그리움은 기도가 되고 별이 됩니다
당신 영혼의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수호천사 별이 되어
언제나 당신을 비출 것입니다”-1997.4
무려 26년전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쓴 시입니다. 벌써 1988년 수도원 초창기 부임하여 1989년 종신서원에 사제품, 그리고 1990년부터 정주하여 오늘 35번째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에 강론을 쓰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당신이 상징하는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자 영원한 연인인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히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영혼의 하늘 안에 빛나는 수호천사의 별이, 주님의 별이, 희망의 별이, 진리의 별이 되어 살고 싶은 열망은 여전하며 이런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아마도 주님의 마음이 이러할 것입니다. 잘 보셔요. 내 영혼의 하늘 안에 언제나 영원히 빛나는 주님의 별, 수호천사의 별, 희망의 별, 진리의 별을!
“별을 바라보라!(Respice Stellam!)”
어제 월피정중 복음 나눔시 원장 수사로부터 우리 오틸리엔 선교 베네딕도 연합회의 예레미야 총 아빠스의 모토란 말을 듣고 참 반가웠고 그대로 오늘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이에다 부제로 “더불어(together) 희망의 순례 여정”을 덧붙였습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복음은 허구라지만 함축된 진리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인간 누구나에 잠재해 있는 구도자의 원형(原型)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마음 깊이에서는 궁극의 진리이자 빛이자 길이자 희망이신 하느님을 찾는 영원한 구도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누구나 별을 찾는, 별을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작금의 대부분 현대인들처럼 주님의 별을, 희망의 별을, 진리의 별을 잊어버릴 때, 잃어버릴 때 방향의 길을 잃어 시작되는 불행이자 비극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복음 나눔시 제가 언급했던 요지의 내용입니다.
“아, 별을 잊어버린,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별이 상징하는바 희망이요 길이요 진리입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정불변의 객관적 별이 아니라, 깨어 끊임없이 간절히 찾는 구도자에게 은총의 선물처럼 계시되는 주님을 가리키는 주님의 별, 희망의 별, 진리의 별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찾아야지 결코 누가 찾아줄 수 없는 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희망의 순례 여정중 희망의 순례자이자 구도자에게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희망의, 진리의 별들이요 찾지 않으면 사라져 캄캄한 절망의 하늘이 될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마음 하늘에는 무수한 희망의 별들이, 주님의 별들이, 진리의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지요? 캄캄한 절망의 하늘은 아닌지요?
간절히 깨어 있는 영혼들에게 참 좋은 주님의 별, 희망의 별, 진리의 별은 가톨릭 교회이고 매일미사보다 더 확실하고 안전한 별도 없을 것입니다. 또 함께 살아가는 참 좋은 신망애(信望愛)의 도반들보다 더 좋은 별도 없을 것입니다. 한두개의 별이 아니라 저 마음 하늘에는 참 무수히 빛나는 주님의 별들입니다.
희망의 순례 여정중인 희망의 순례자이자 구도자에게 주님을 가리키는 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활짝 열린 구도의 순례 여정입니다. 오늘 주님의 별따라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님을 찾았던 이들은 먼 이방의 동방 박사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신비가 환히 계시됩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비단 가톨릭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온세대, 온인류에게 활짝 열려있는 구원의 순례 여정을 상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의 복음입니다.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말씀은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이웃을 주님께 인도하는 주님의 별,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우리 하나하나 주님의 별이, 희망의 별이, 진리의 별이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동방 박사들이야말로 영원한 구도자, 순례자의 모범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10년전 2014년 산티아고 순례 여정중의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30일 전후로 끝나지만, 우리 각자 삶의 순례 여정은 죽어야 끝납니다. 아마도 동방박사들의 베들레헴 순례 여정은 수년쯤 걸렸으리라 생각됩니다.
아, 모두가 마음 깊이에서는 희망의 구도자요 순례자이자, 진리의 구도자요 순례자입니다. 인간의 고질적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방의 구원은 평생 순례 여정에 충실하는 길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동방박사들 산전수전, 신산고초(辛酸苦楚)의 시련과 고난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죽을 고비도 도중하차할 유혹도 많았을 것입니다. 막판에 한눈 팔다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어 곤경에 처했지만 은총으로 별따라 베들레헴에 궁극의 목적지에 도착하니 참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묘사가 은혜롭습니다.
‘그리고 그 비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갔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행복합니다. 날마다의 미사전례를 통해 궁극의 목적지 도착을 앞당겨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전례중 여러분은 무슨 예물을 주님께 드리겠습니까? 알려드리겠습니다. 신망애(信望愛) 삶의 보물도 좋고 진선미(眞善美) 삶의 보물도 좋습니다. 있는대로 정성껏 봉헌하면 그 몇배로 더 축복의 은총을 받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성공적 순례 여정을 마치고 금의환향합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 순례여정은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시 평범한 일상에서 다시 시작된 내적 순례 여정이요 예전의 그들과는 판이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깊은 체험이 바탕이 됐기에 더욱 깊어졌을 내적 순례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순례여정이나 산티아고 순례여정은 우리의 평생 순례 여정을 상징합니다. 제가 체험한바 평생 희망의 순례 여정중 주목하는바 네 공통적 요소입니다. 1.목적지, 2.이정표, 3.도반, 4,기도입니다. 동방박사들의 목적지는 베들레헴이었고 이정표는 주님의 별, 그리고 도반들입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발타살, 카스발, 멜키올 세 도반의 동방박사들이요, 이들은 함께 하는 여정중 필시 기도도 바쳤을 것입니다.
제 산티아고 순례시 목적지는 산티아고 대성전이었고, 수백개의 이정표를 따라 갔으며, 두 도반이 있었고 때로 다양한 도반들도 함께 했으며, 무엇보다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중에도 매일미사에 매일강론, 그리고 시간경도 도반들과 함께 바쳤습니다. 걸을 때는 묵주기도, 그리고 가장 많이 바쳤던 다음 시편 성구입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주님의 집, 산티아고 대성전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힘차고 빨랐던 발걸음을 잊지 못합니다. 때로 도반들은 희망의 이정표 역할도 했고 최상, 최고의 영원한 도반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히 함께 계시는 주님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 이정표 따라 제대로 가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요!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으니 평생 도반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순례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여정은 30일 전후로 끝나지만 더불어 수도형제들과의 제 수도순례여정은 죽어야 끝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도반인 수도형제들과 함께 하는 매일공동전례의 이정표 따라 죽어 주님의 집에 이를때까지 계속될 순례여정입니다.
참 좋은 수도 형제들은 도반들이 됨과 동시에 희망의 이정표 역할도 하니 성가정 수도공동생활의 축복입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 수시로 확인하는 삶의 순례 여정중 시점(時點)입니다. 이래야 하루하루 날마다 영원한 주님의 현역의 주님의 전사, 주님의 학인이 되어 삶의 환상이나 허영,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 많이도 인용했던 내용입니다.
저로 말하면 늘 말하지만 하루로 하면 오후 4:30, 계절로 하면 초겨울 지금쯤 되어보이네요. 참으로 이런 자각이 깨어 환한 의식으로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도반들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며 하늘나라 천국의 영원한 선물 인생을 살게 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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