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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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1-10 | 조회수485 | 추천수7 | 반대(0) |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인구가 오천만이니 5명 중에 1명은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면 역대 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명량을 비롯해서 열아홉 개가 있었으니 서울의 봄은 20번째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장충동에서 신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주보에 ‘광주’에 대한 글을 게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딘가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나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자들은 매일 성당에 모여서 본당 신부님이 무사히 돌아오시도록 기도했습니다. 형은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나중에 ‘국난 극복 훈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삼청 교육대’에 끌려갔다가 온 동네 형들도 있었습니다. 군인 출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부에서 과외 금지를 실시하였습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었고,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율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제가 기억하는 서울의 봄입니다. 영화는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이 서거하였고, 그 권력의 빈자리를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채우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권력의 빈자리는 몇몇 정치군인들의 총과 칼에 의해서 탈취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은 통폐합 되었습니다. 권력에 비판적인 민주인사들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권력에 저항하는 청년들은 고문을 당하였고, 군대에 징집되었습니다. 저항하는 국민과 폭력으로 진압하는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입니다. 당시 신문은 폭도들에 의한 혼란이 있었고, 정부는 폭도들을 진압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권력은 막강했고, 민주시민들의 저항은 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들풀처럼 시민들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87년 저항하는 국민과 폭력으로 진압하는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 ‘6.10 항쟁’입니다. 그리고 권력은 헌법을 바꾸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를 부활하였습니다. 그렇게 ‘서울의 봄’은 많은 민주인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죽음의 제단 위에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병환자의 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병환자는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병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에게는 긴 겨울이 계속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는 죄인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육체가 병들어가면서 절망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도 헤어져서 외롭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주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예수님께 다가와서 간절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에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육체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환자에게 드디어 봄이 왔습니다. 나병환자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도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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