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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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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11 조회수226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1주간 목요일] 마르 1,40-45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번째 교전에서 이스라엘이 사천명이 넘는 아군병사를 잃고 패배하자, 백성의 원로들은 '계약의 궤'를 진영으로 모셔오기로 합니다. '계약의 궤'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판이 보관되어 있는 상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느님의 현존', 즉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심을 상징하는 아주 중요하고 성스러운 물건이었지요. 그런 '계약의 궤'를 진영의 중심에 두고 전투에 임하는 모습은 언뜻 보면 하느님을 깊이 신뢰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하느님께 보인 태도는 참된 신앙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과 그분의 능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어리석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첫번째 전투에서 자신들을 패배하게 하신 뜻이 무엇인지, 그 전투에 임함에 있어서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이 부족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반성 없이, 그저 '계약의 궤'만 모셔오면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자신들을 위해서 싸워주실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의 뜻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하느님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요.

 

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해야했던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대패하여 수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살당했고, 목숨보다 소중한 '계약의 궤'를 적들에게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은 그들에게 '참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주님의 말씀과 계명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하느님의 현존을 그 자체로 경외하며 소중히 여기는 경건한 마음도 없이,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목적과 계획을 성취해주는 영험한 '도구'로만 여기는 잘못된 마음가짐을 바로잡고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환자는 그들과는 아주 상반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에게서는 하느님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교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님께 청하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에서 나타나는 것은 '기도를 들어주시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소극적인 믿음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즉, 주님께서 자신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시더라도 그 또한 그분의 뜻이고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온전히 주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지요.

 

겸허한 모습으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그 소경의 모습에서 자신의 기대와 바람을 완전히 비우고 오직 주님만, 오직 그분의 뜻만 남기려는 온전한 의탁의 자세가 엿보입니다. 즉 그 소경은 자신의 뜻과 의지를 잠시 뒤로 미뤄두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안계시면 나도 없다'는 결연한 각오로,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뒤로 물러설 여지(餘地)를 한 치도 남겨두지 않고 '주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지요. 그것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굳은 믿음을 보시고 그의 청원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드리는 기도를 잘 안들어주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분께 기도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분의 능력을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수단'으로만 삼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그래서 그분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뜻을 이루어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아도 괜찮은 여지를 나 스스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소경처럼 당신을 굳게 믿고 당신께 온전히 의탁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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