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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일치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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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12 조회수103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일치주간] 마르 2,1-12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오늘 복음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께서 계시던 집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예수님을 만나 병을 고치자니, 그것도 혼자서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친구를 들것에 든 상태로 수많은 군중들 틈을 헤집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니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 자신들의 친구를 예수님 가까이로 내려보내지요.

 

 그런데 그들이 원하던 바를 이루기위해 저지른 잘못들을 하나 하나 따져보면 참으로 심각합니다. ‘순서’를 지키지 않고, 먼저 온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새치기’를 한 것은 그나마 다른 죄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입니다. 남의 집 지붕 위에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올라갔으니 ‘주거침입죄’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헌법으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지요. 어떻게든 친구를 예수님 가까이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남의 집 지붕 위에 덮어둔 마감재를 벗겨내고 거기에 커다란 구멍까지 뚫었으니 ‘재물 손괴죄’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헌법으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 게다가 혹시 그 과정에서 지붕 아래 있던 사람들이 떨어진 물건에 맞아 다치기라도 했다면 ‘상해죄’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헌법으로는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런 ‘죄’를 저지르느냐고 그들을 혼내시거나 벌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순수한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중병에 시달리며 고통받은 친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음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시어 건강한 몸으로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일까요? 마음에 품은 의도만 선하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상관없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선포하신 이유는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저지르든,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기꺼이 용서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음 속에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 없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마음, ‘사랑’ 없이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며 단죄하려드는 우리의 차가운 마음, ‘사랑’ 없이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끝까지 미워하며 자신은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용서’ 같은 건 하느님처럼 완전한 분이나 하실 수 있는거라고 용서의 의무를 하느님께 떠넘기는 냉혹한 마음... 그러면서 나는 적어도 ‘계명’을 어기지는 않았으니 괜찮다고, 문제 없다고, ‘죄’가 없다고 착각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이성’. 이렇게 따뜻한 ‘사랑’은 없고 차가운 ‘이성’만 있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는 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크고 심각한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얽매여 살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죄’를 지으면 어쩌나 하고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도, ‘죄’를 짓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나태한 모습으로 사는 것도 다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없으면 내 영혼이라는 기구를 따뜻한 공기로 채울 수 없고, 그런 상태로는 하느님 나라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여러가지로 부족한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마음에 새기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삶 속에서 들고 다녀야 할 ‘사랑의 들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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