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상 지식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요한 1,35-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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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1-14 | 조회수15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24년 01월 14일 일요일 [연중 제2주일]
세상 지식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짝인 그리스도(용서)를 못 만나게 되고,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말씀도 못 만난다. (요한 1,35-42) 35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 이튿날(듀오-짝) 앞의 짝으로 그곳에 다시 섰다는 것이다.
앞절 1,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3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 그 증언의 짝으로 그곳, 그 자리에 다시 서 있는 것이다.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반복하여 말한다. 복음의 핵심이다’는 뜻이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 스승님께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 한테 들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성령과 함께 하시는~’ 그 말의 의미, 뜻을 더 알고 싶다는 것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 함께 묵었는데, 곧 밤을 함께 지냈는데 4시? 그것은 밤을 함께 지낸 것이 넷(4)의 의미라는 것이다. 공관복음 모두 첫 제자들을 뽑는데 ‘네(4)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네(4)시’로 말하고 있다. 모두 넷, 그 4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땅의 숫자4, 동서남북, 춘하추동, 곧 땅의 완성을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땅의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것이고, ‘함께 묵었다’가 그 넷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밤, 잠은 모두 죄와 죽음을 뜻한다. 그 어둠, 죄의 존재들이 죄를 없애시는, 빛이신 분과 함께 지냈으니 그 땅의 어둠들이 하늘의 빛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곧 빛(善)이 어둠(惡)으로 들어오신 빛의 죽음, 신의 죽음, 하늘(3)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4의 완성, 땅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그리스도’이다. = 스승과 함께 밤을 묵고 나서, 곧 성령이신 분과 한 몸이 되고 나서, 그 스승 예수님이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 ‘데려가다’- 예수님과 함께 묵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시몬’에서 ‘베드로’가 된 것이다. 곧 진리의 성령이신 그리스도로 - 물이 없는 시몬에서 생명수가 나오는 반석(케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물)을 ‘갖은자, 선포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 그 사람의 말로 예수님을 듣고 성당에 왔다. 그러나 그 사람의 관점으로 들었던 그 예수님을 알면, 믿으면 안된다. 시간 낭비며 헛된 수고요 헛된 신앙이 된다. 성령을 받아 그분의 보호하심, 이끄심으로 어둠인 나와 한 몸이 되시기 위해 어둠으로 들어와 주신, 죽어주신 그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소원이나 들어주시는 예수님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나의 구원을 위해 죽어주신 그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1독서, 사무엘상 3,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 하느님과 함께하는 말, 곧 하느님의 말씀이 땅의 것으로, 곧 사람의 욕망을 위한 말이 안 되게, 하느님의 뜻을 위한 말씀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인 구원을 위한 대속, 그 진리의 가치가 소중함을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깨닫고 믿게 해 주셔야, 그때 올바른 참 신앙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일부 사제들께서 ‘나는 성령은 모르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안다’. ‘사랑으로 산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사55,9 1코린2,5참조)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드시 성령과 함께 해야 한다. 성령은 갈망하고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다.(루가11,13)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물면 진리, 곧 성령을 깨닫게 될 것이라 하셨다.(요한8,31~)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고 한 것이다.(로마8,9)
오늘2독서에서도, 고린도전서 6,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하느님께서 값(대속)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갈라1,4)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지금의 이 악한 세상에서 구해 내시려고, 우리 죄 때문에 당신 자신을(속죄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 그러니 하느님의 영광을, 곧 그분의 신성과 본성인 그 십자가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그 하느님의 사랑이 빛나도록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죄 투성인 나, 매일 죄에 떨어지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을 속죄 제물로 내어주신 그 하느님의 용서(사랑)에 감사하며, 용서의 삶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 하느님의 사랑(용서)으로 서로 용서하며 사는 것, 그래서 이웃도 그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용서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로 얻는 땅의 완성, 그분과 함께 밤에 묵는 넷(4), 구원인 것이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하신 계명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임을 알게, 믿게 해주신 천주의 성령님! 사랑합니다.~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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