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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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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14 조회수166 추천수5 반대(0) 신고

240114. 연중 제2주일.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연중 2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부르심과 응답, 그리고 그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말씀의 ‘들음’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전해줍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8)

<화답송>에서 시편작가는 응답의 사명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데 있음을 노래합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시 40,8)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의 “지체”(1코린 6,15)로 삼으시고 “성전”(1코린 6,19)으로 삼으시니, 그에 합당하게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20)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로 안내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곧 ‘제자 됨의 길’을 깨우쳐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곱 개의 동사, 곧 일곱 가지 행동을 요청합니다. 곧 ‘듣다.’ ‘따라 가다’, ‘함께 가다’, ‘보다’, ‘함께 묵다’, ‘말하다(선포하다)’, ‘그분께 데려가다.’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에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따라 갔습니다.”(요한 1,37). 여기서 제자가 가는 두 가지를 길을 말해줍니다. 곧 “듣다”와 “따라가다”라는 동사는, 제자 되는 길이 단지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는 수동적인 측면을 넘어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순명의 자세를 포함하며, 단지 추종한다는 것을 너머서 운명을 같이하고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따라오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곧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진정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며, 진정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일깨워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라삐, 어디에 묶으십니까?”(요한 1,38)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그분이 “묶으신 곳”이라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라는 당신 인격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와서 보아라.”(요한 1,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격적 체험을 직접 하도록 초대하십니다. 곧 원하는 그것을 “보게 되리라”는 약속과 보장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신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습니다.”(요한 1,39). 여기서, 제자들이 가는 길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곧 그분과 “함께 가”는 일, 그분께서 묵는 곳으로 인도를 받아 함께 가는 일이요, 그곳을 “보는” 일,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일이요, 그분과 “함께 묵는” 일, 그분을 체험하여 사랑으로 흠뻑 젖는 일입니다.
 
그러니, “와서 보아라.”(요한 1,39)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쪽으로 걸어라’, ‘이렇게 걸어라’라는 제자들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체험을 통하여 배우야 함을 깨우쳐줍니다. 사실 ‘제자’라는 히브리어(탈미딤)와 희랍어(마테테스)의 뜻은 ‘배움에 헌신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모범을 우리는 엘리사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엘리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시종이 되어 섬기고 전적으로 헌신하면서 전인격적 유대로 변형을 이루어 갑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스승과 사별할 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2열왕 2,12)라고 부르짖으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스승과의 인격적 관계는 친아버지를 넘어서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랍비가 다 같이 인질로 잡혀가면, 제자는 랍비의 몸값을 먼저 지불해야 한다.”, “아버지와 스승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 먼저 스승의 짐을 덜어드린 후 아버지의 짐을 거들어야 한다.”
 
결국,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진리나 스승에 대한 정보적인 접근이 아니라, 교리적인 진리를 배우고 신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따라 사는, 스승을 닮아가는 진정한 변형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님과 함께 묶은 그들은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갑니다.”(요한 1,42 참조). 여기에서 제자들의 두 가지 사명이 드러납니다. 곧 그분을 ‘말하는’ 일, 증언하고 선포하는 일이요,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일이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마태 28,19) 사명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동반자요 반려자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향하여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우리 주님의 동행을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해줍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2코린 2,14)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동행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이 복된 길을 동행하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증언하여 선포하고 증거자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것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요한 1,39)
 
주님!
말씀을 듣고 단지 동의하지만 말고, 받아들여 따르게 하소서.
따르지만 말고, 전적인 헌신으로 당신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오늘도 무엇을 찾고, 무엇을 원해야 할지를 일깨워주시고
저를 향해 계시는 당신을 향해 달려가게 하소서.
당신 사랑에 흠뻑 젖게 하시어,
당신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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