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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마르코 2, 23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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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15 조회수166 추천수2 반대(0) 신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2, 27)

저는 오늘 복음을 들을 때면, 1986년 맨 처음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던 당시 밀밭 사이를 지나갔던 때의 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일행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길이 아닌 밀밭을 가로질러 가십니다. 견물생심이란 표현처럼 제자들은 배가 고파서인지 아니면 단지 심심풀이로 한 것인지 모르지만,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그 장면을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행 중에 미행하고 감시한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빌미를 잡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2,24)라고 추궁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탓이고, 제자의 잘못은 스승의 탓이라고 보았기에, 그들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은 스승이 잘못 교육한 탓이라 판단해서 그 스승이신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의도에서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이겠지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범한 것은 제자들이었지만, 스승의 얼굴에,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잘못을 한 제자들 때문에 예수님은 바리사이에게서 불편한 질문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추궁 아닌 추궁과 같은 질문에 답변하시기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먼저 과거의 사례를 언급하시면서 오히려 미묘한 역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들이 그토록 존중하며 모시는 다윗의 예를 들면서, 즉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정작 안식일에 그 일을 한 사람에게 생존을 위해 정말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어떤 판단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물으셨던 것입니다. (2,25~26참조) 곧 사람이 죽고 사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면 어떻게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사례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돌리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안식일 법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관습적인 사고 체계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2,27~28) 이는 곧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만드신 근본 의도와 취지를 일깨우시면서 그들의 시선을 돌리고, 마음의 변화를 촉구하고 계신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도 역시 해당합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듯이, 안식일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 쉬신 것처럼 쉬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는 쉼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하느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자신이 한 일을 되돌아보면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더욱더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통해서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돌볼 수 있도록 하느님 안에서 쉬도록 초대받습니다. 이는 곧 당신과 함께 당신 안에서 쉼을 누리도록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고 그 쉼을 통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자부심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창조되었기에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열성으로 실행해야 하며, 그다음엔 자신이 이룬 일을 즐기면서 그 모든 일과 쉼을 통해 삶의 활기와 생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인간의 일은 시작도 그렇지만 마침도 하느님의 능력과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창조에 참여한 것처럼 그 쉼도 하느님과 더불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주어진 안식일 역시 사랑의 중단이 아닌 사랑의 확인이며 모든 것에 대한 함께 머묾이며 친교의 시간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비록 안식일이라 해서, 사랑은, 특히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중단될 수 없기에 하느님 모상 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린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힘들어한다면 그 자체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보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자비의 관점에서 안식일을 바라보도록 주님은 바리사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안식일이라 해서 그들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그들의 필요를 무시한다면, 그것이 진정 하느님께서 바라실 것이며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일일까요?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1코2,16) 하느님의 뜻은 인간을 모든 것으로부터 심지어 율법과 안식일 법일지라도 인간이 당신의 아들과 딸로서 누려야 할 참 자유와 생명을 충만히 살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면 기꺼이 폐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느님의 깊은 뜻과 배려를 단순히 계명으로만 해석하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고귀함을 품위를 누리지 못하기에 높고 단단한 벽을 허물었던 것입니다. 잠시 이런 시선에서 사도 바오로의 권고를 들어 봅시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서로 심판하지 맙시다. 오히려 형제 앞에 장애물이나 걸림돌을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로12,15: 13,9; 14,13)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이 당신 참된 사랑의 품에서 안식을, 사랑을 느끼도록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우리 역시도 안식일을 그분과 함께 그분처럼 지키면서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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