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예수 수난 제24시간 (오후 4시 - 5시) - 무덤에 묻히시다. 마리아의 비탄 / 교회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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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병찬 | 작성일2024-01-18 | 조회수27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교회인가)에 대한 기도는 24시간 매시간마다 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도의 효과와 예수님의 약속은 너무나 풍성하며, 이 기도문 아래에 있습니다. 제24시간 (오후 4시 - 5시) 무덤에 묻히시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비탄 준비기도 오, 저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24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깊이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 드는 때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실행한 것처럼 저와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로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고자 하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1 고통에 잠기신 엄마, 제가 보니, 엄마는 마지막 희생을, 곧 숨을 거두신 아들 예수님을 무덤에 묻어야 하는 희생을 치를 마음의 준비가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시고 동반하시어, 그분을 당신 자신의 손으로 무덤에 안치하십니다. 2 그러나 그 팔다리와 몸을 가지런히 정돈한 후 작별 인사와 마지막 입맞춤을 하시려고 하는 순간, 고통 때문에 심장이 가슴에서 뜯겨 나가는 느낌이 드십니다. 사랑이 엄마를 예수님의 지체에 못 박으니, 사랑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없는 아드님과 함께 어머니의 생명도 바야흐로 꺼지려고 합니다. 3 가엾으신 엄마, 예수님 없이 어떻게 지내시겠습니까? 그분은 엄마의 생명 ― 엄마의 모든 것이 아니십니까?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 영원하신 분의 뜻입니다. 엄마는 그러니까 뛰어넘을 수 없는 두 개의 힘, 곧 사랑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싸워야 하십니다. 4 사랑은 엄마를 못 박아 예수님에게서 떨어질 수 없게 하고, 하느님의 뜻은 위압적으로 희생을 요구합니다. 가엾으신 엄마, 어떻게 하시렵니까?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습니다! 오, 하늘의 천사들이여, 어서 와서 딱딱하게 굳은 예수님의 지체에서 엄마를 일으켜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엄마마저 돌아가시겠습니다! 5 그런데, 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예수님과 함께 숨을 거두신 것 같았던 엄마의 음성이 들립니다. 흐느낌 때문에 끊어지곤 하는 떨리는 음성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6 “사랑하는 아들아, 오, 아들아, 네 지극히 거룩한 몸의 이 상처들에 나 자신을 쏟아 부으며 엎드려 경배하고 입 맞추는 것이 내게 남은 유일한 위안이었고, 내 고통을 반감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제 이 위안마저 내게서 앗아 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니, 나로서는 그분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 7 하지만 알아 다오, 아들아,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 생각만 해도 힘이 다 빠지고 생명의 숨줄이 끊어지는 것 같다. 오, 아들아, 여기에서 떠나갈 수 있는 힘과 생명을 받도록, 부디 내 온 존재를 네 안에 묻고, 너의 생명과 고통과 보속과 있는 그대로의 너 전부를 가지게 해 다오. 그렇다. 너와 나 사이의 이 생명의 교환만이 네게서 떠나는 희생을 감수할 힘을 내게 줄 수 있다.” 8 괴로움에 싸이신 엄마, 제가 보니, 그렇게 결심을 하신 후에도 엄마는 다시 예수님의 지체들을 매만지시며 예수님의 머리 안에 엄마의 머리를 넣으십니다. 즉, 예수님의 머리에 입 맞추면서 엄마의 생각들을 그분의 머리 안에 넣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시들과 모욕에 시달리며 괴로워하신 그분의 생각들 및 그분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머리로 겪으신 모든 것을 엄마의 것으로 가지십니다. 9 오, 당신의 지성으로 예수님의 지성에 생명을 불어넣기를, 그리하여 생명이신 분께 생명을 드릴 수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시는지! 그러고 나자 엄마는 이제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가시들을 당신의 정신 속에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10 고통에 잠기신 엄마, 예수님의 생명 없는 눈에 입 맞추시는 엄마가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엄마를 못 보시는 것을 보니 제 가슴도 미어지도록 아픕니다. 그분의 눈길이 얼마나 자주 엄마를 낙원(의 지복)으로 충만케 하셨으며,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일으키곤 하셨습니까! 11 그런데 그 눈길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졌으니,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느낄 수밖에 없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눈 속에 엄마의 눈을 넣고, 예수님의 눈과 눈물을, 사람들의 죄와 수많은 모욕과 조롱을 보신 예수님의 쓰디쓴 쓰라림을 엄마의 것으로 가지십니다. 12 (영혼이) 꿰찔리신 저의 엄마, 그리고 저는 엄마가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귀에 입 맞추시는 모습을 봅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예수님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3 “내 아들아, 네가 이제 내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나의 아주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던 네가 아니냐? 지금은 내가 소리 내어 울며 너를 부르고 있는데도 들을 수 없다니! 아, 사랑이야말로 더없이 잔인한 폭군이로구나! 14 내게는 네가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내가 이제 이런 고통을 치르고도 살아남아야 한단 말이냐? 그러니, 오, 아들아, 너의 청력(聽力) 속에 내 청력을 남겨 두고, 네 거룩한 귀로 겪은 것과 네 귓속에 울려 퍼지던 모욕들의 반향은 내가 가져야 하겠다. 너의 고통, 너의 비통만이 내게 생명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15 엄마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마음이 너무 슬프고 괴로워 말문이 막히신 채 옴짝도 못하십니다. 가엾으신 엄마, 가엾으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얼마나 번번이 가혹한 죽음을 겪곤 하시는지! 16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 그 엄위로 엄마를 움직이게 하십니다. 엄마는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얼굴을 보시고 입 맞추시면서 부르짖으십니다. 17 “사랑스러운 아들아, 네 얼굴이 어찌 이다지도 상했느냐! 네가 내 아들이요 내 생명이며 내 전부라는 것을 사랑이 내게 일러주지 않았다면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너의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변했고, 뺨은 얻어맞아 멍투성이가 되었고, 오, 사랑하는 아들아, 보기만 해도 천상의 지복을 느끼게 하던 네 얼굴의 빛과 은혜로움이 이제는 죽음의 창백함으로 바뀌고 말았구나. 18 아들아, 네가 어떤 모습이 되고 말았는지! 죄라는 것이 네 지극히 거룩한 지체에 얼마나 흉악한 짓을 저질렀는지! 아, 너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이 엄마는 네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돌려 줄 수 있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19 그러므로 네 얼굴 안에 내 얼굴이 녹아들게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네 얼굴을, 네가 이 지극히 거룩한 얼굴에 받은 타격과 침과 조롱과 그 모든 고통을 나를 위해서 가지겠다. 아, 그렇다, 아들아, 내가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너의 고통들을 다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 20 그러자 격한 슬픔에 숨이 막혀 말씀을 멈추십니다. 그리고 마치 숨을 거두신 것처럼 예수님의 얼굴 위에 엎드려 계십니다. 가엾으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애처롭습니다! 21 나의 천사들이여, 와서 엄마를 위안해 주십시오. 그분의 고통은 한정이 없습니다. 고통이 홍수처럼 밀어닥쳐 엄마를 잠그고 숨 막히게 하며 더 이상 생명이나 힘을 남겨 두지 않습니다. 22 그렇지만 하느님의 뜻은 엄마를 잠그는 이 드센 물살을 가르면서 엄마에게 생명을 돌려주십니다. 23 그래서 이제 엄마는 예수님의 입으로 옮아가십니다. 예수님의 입에 입 맞추시면서 이 입을 그토록 쓰게 했던 쓸개즙의 맛을 입술로 느끼십니다. 그리고 흐느껴 우시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아들아, 이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려무나. 내가 네 음성을 다시 못 듣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네가 생전에 내게 해 준 모든 말이 같은 수의 화살들과 같이 내 마음에 고통과 사랑의 상처를 내었는데, 네가 지금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것들이 갈가리 미어진 내 마음속에서 또다시 술렁대면서 나로 하여금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겪게 한다. 25 그리고 억지로라도 네게서 마지막 말을 뽑아내려고 한다. 그래도 그것을 받지 못하자 나를 괴롭히면서 이렇게들 말한다. ‘그런즉 어머니는 이제 그분의 말씀을 들으실 수 없어요. 그 창조적인 말씀의 감미로운 어조와 음색을 다시는 들으실 수 없다니까요.’ 26 과연 너의 말은 네가 내 안에 창조한, 같은 수의 낙원이었다. 아, 그 낙원이 끝장나고, 쓰디쓴 쓰라림만 내게 남았구나! 아, 아들아, 그러니 내 혀를 너에게 주어, 너의 혀에 생기를 불어넣겠다. 너는 나에게 네가 이 거룩한 입으로 겪은 모든 것 ― 그 쓸개즙의 쓴맛과 불타는 목마름과 보속과 기도를 다오. 그 모든 것을 통해 네 목소리를 들으면 내 고통을 더 잘 견딜 수 있으리니, 이 엄마는 네 고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27 심한 고통에 싸여 계신 엄마, 그럼에도 이제 서두르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덤 입구를 막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거의 날아가듯 급히 옮아가시어 예수님의 손을 부여잡고 입 맞추시며 엄마의 가슴에 붙여 안으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 안에 어머니의 손을 넣어 이 지극히 거룩한 손이 겪으신 고통과 상처들을 엄마를 위하여 간직하십니다. 28 그런 후 예수님의 발로 급히 넘어가시어, 못에 뚫린 잔혹한 상처들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발 안에 엄마의 발을 넣으시고 그 상처들을 간직하십니다. 또 예수님 대신 죄인들을 뒤쫓아 지옥문에서 잡아채기 위하여 엄마 자신을 바치십니다. 29 고뇌에 찬 엄마, 이제 엄마는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성심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십니다. 엄마의 모성적인 심장이 마지막 습격을 받은 셈이니, 격렬한 사랑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가슴에서 심장이 잡아 뜯기는 느낌이 들더니 그것이 스스로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심장 속으로 달려가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30 그러자 엄마는 심장이 없는 자신을 보시고 서둘러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심장을 당신의 가슴 안으로 가져가십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척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그들의 배은으로 이루지 못한 그분의 열망을, 또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당신을 못 박힌 상태로 있게 할 그분 성심의 고통과 꿰뚫린 상처를 간직하십니다. 31 그리고 엄마는 예수 성심의 그 벌어진 상처를 보면서 입 맞추시고, 그 피를 핥기도 하십니다. 이윽고 예수님의 생명이 당신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끼시자 이 쓰라린 이별을 할 수 있는 힘도 얻으십니다. 그래서 엄마는 예수님을 껴안으신 다음 사람들에게 돌로 무덤을 막도록 허락하십니다. 32 비탄에 잠기신 엄마, 울면서 당신께 간청하오니, 이제부터 저희가 예수님을 못 뵙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제가 먼저 저 자신을 예수님 안에 넣도록 기다려 주십시오. 제 안에 예수님의 생명을 간직하려는 것입니다. 33 티 없이 깨끗하고 온전히 거룩하며 은총이 가득하신 당신께서 예수님 없이 사실 수가 없다면, 나약하고 비천하며 죄가 가득한 저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분 없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비탄에 잠기신 엄마, 제발 저를 홀로 버려두지 마시고, 어머니와 함께 있도록 데려가 주십시오. 34 그러나 우선 저 자신을 온전히 예수님 안에 넣어 주십시오. 제게서 모든 것을 비워 주십시오. 엄마가 예수님을 엄마 안에 모신 것처럼 저도 그렇게 예수님을 온전히 제 안에 모시기 위함입니다. 35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엄마에게 주신 모성적 임무를 제게서 시작하시어, 어머니다우신 그 마음으로 저의 이 극심한 가난을 깨부수시고, 엄마 자신의 손으로 저를 완전히 예수님 안에 넣어 주십시오. 36 제 정신 안에 예수님의 생각을 넣어 다른 어떤 생각도 들어오지 않게 하시고, 제 눈 안에 예수님의 눈을 넣어 그분께서 제 눈길에서 달아나시는 일이 없게 하시고, 제 청력 안에 예수님의 청력을 넣어 제가 언제나 그분 말씀을 여겨듣게 하시고 매사에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37 또 제 얼굴 안에 예수님의 얼굴을 넣어 저에 대한 사랑으로 그토록 손상된 그분을 보면서 사랑과 따뜻한 동정심과 보속을 드리게 하시고, 제 혀 안에 예수님의 혀를 넣어 그분의 혀로 말하고 기도하며 가르치게 하시고, 제 손안에 예수님의 손을 넣어 제가 하는 활동과 이루는 업적마다 그분의 업적과 활동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제 발 안에 예수님의 발을 넣어 제가 옮기는 걸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생명, 힘의 생명, 열성의 생명이 되게 해 주십시오. 38 심한 고난을 겪고 계신 엄마, 이제 제가 예수님의 성심에 입 맞추고 그분의 지극히 보배로우신 피를 핥게 허락해 주십시오. 엄마가 친히 제 마음 안에 예수님의 성심을 넣어 주시어, 제가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갈망으로, 그분의 고통으로 살게 하십시오. 끝으로, 싸늘하게 식은 예수님의 오른손을 잡으시어 저에게 마지막 축복을 내리시게 해 주십시오. 39 사람들이 이제 큰 돌로 무덤을 막으려고 합니다. 엄마는 몹시 괴로워하시며 무덤 (바닥)에 입 맞추십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께 작별을 고하고 무덤을 떠나십니다.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피가 얼어붙어 온몸이 거의 굳어버린 듯합니다. 40 (영혼이) 꿰찔리신 엄마, 엄마와 함께 저도 예수님께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울면서 엄마에게 동정심을 표현하고, 쓰디쓴 비탄 중에 계신 엄마와 함께 있겠습니다.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탄식과 극심한 고통과 슬픔의 회오리가 몰아칠 때마다 위로의 말씀과 따뜻한 연민의 눈길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눈물을 모아 두고, 혹시 기절이라도 하시면 제 팔로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41 그런데 엄마는 이제 이리로 오셨던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몇 걸음 못 가서 벌써,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숨을 거두신 십자가가 저 앞에 보입니다. 엄마는 달려가서 십자가를 껴안으십니다. 십자가가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시자 예수님께서 그 위에 달려 겪으신 고통들이 저마다 마음속에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42 그러자 북받쳐 오르는 슬픔에 휩싸여 이렇게 외치십니다. “오, 십자가야, 너는 내 아들에게 어찌 그리도 잔인할 수 있었느냐? 아, 그에게 그토록 가차 없이 굴다니, 내 아들이 네게 무슨 잘못이라도 범했더란 말이냐? 43 너는 이 고통에 찬 엄마가 목말라하는 아들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바싹 메마른 입에 쓸개즙과 식초를 주었다! 나는 내 꿰찔린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고, 이 심장 녹은 물이라도 갈증으로 타는 아들의 입술에 대어 주고 싶었건만, 거절당하는 나를 보는 슬픔만 맛보았을 뿐이다. 44 그렇다, 오, 십자가야, 너는 잔인하다. 잔인하지만 또한 거룩하다. 내 아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성화되고 신화되었기 때문이다! 내 아들에게 쏟아 부은 그 잔인함을 가련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로 바꾸어라. 그리고 내 아들이 네 위에서 겪은 고통으로,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한 은총과 힘을 간청하여라. 그러면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환난과 십자가 때문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45 나는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영혼들을 얻는다. 그것은 천주 성자의 생명을 바쳐야 할 만큼 비싼 대가이니, 오, 십자가야, 나는 공동 구속자요 어머니로서 영혼들을 너에게 묶는다.” 그리고 엄마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거듭 십자가에 입 맞추신 뒤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46 가엾으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새로운 고통이 치밀어 오르면서 점점 더 크고 더 쓰라린 아픔이 됩니다. 이것이 홍수처럼 몰려와 엄마를 가라앉힐 기세인지라 매순간 죽음을 겪곤 하십니다. 47 얼마를 더 걸었을까, 이번에는 오늘 아침 예수님을 만나신 지점에 이르십니다. 예수님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핏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시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중이었고, 머리에 가시다발을 쓰고 계셨는데, 타격을 받으실 때마다 가시들이 십자가에 부딪히며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죽음의 고통을 겪으시게 했습니다. 48 예수님은 엄마와 눈이 마주치시자 따뜻한 동정심의 표현을 기대하셨지만, 군사들은 두 분에게 그 위안마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떼밀어 넘어지시게 하였고, 이 때문에 새로운 피를 쏟으시게 했을 뿐입니다. 49 엄마는 이제, 그 피를 빨아들인 땅을 보시고 꿇어 엎드려 거기에 입을 맞추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소리가 제 귀에 들립니다. “내 천사들아, 와서 이 피의 수호자들이 되어, 단 한 방울도 짓밟히며 모독되는 일이 없게 해 다오.” 50 고통이 가득하신 엄마, 제 손으로 엄마를 일으켜 세우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엄마가 예수님의 피 위에 엎드려 혼절하신 것 같아 보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새로운 고통을 만나십니다. 곳곳에 예수님의 핏자국이 있어 그분의 고통이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시고, 다락방으로 들어가셔서 나오시지 않습니다. 51 저도 다락방에 들어가서 저 자신을 그 안에 가둡니다. 저의 다락방은 바로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인 까닭입니다. 이 성심에서 엄마에게 가고자 합니다. 이리도 쓰디쓴 비탄의 시간에 엄마와 함께 있으려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고통 중에 계신 엄마를 차마 홀로 버려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52 한데 엄마는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무덤 속) 예수님에게서 간직하신 가시들을 느끼십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저도 가시들에 찔리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가시들은 저희가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나타내거니와, 그것이 엄마의 눈마저 찔러 피눈물이 흐르게 합니다. 53 게다가 엄마의 눈 안에 예수님의 시력을 간직하셨기에 인간의 모든 죄가 눈앞을 스쳐 가는 것을 보십니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는지! 또 예수님께서 겪으신 온갖 고통을 고스란히 다 느끼십니다! 그분 자신의 고통을 엄마 안에 간직하셨기 때문입니다. 54 과연 고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빠르게 이어집니다.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소리들이 ― 그 갖가지 모욕적인 말들이 귓속이 먹먹하도록 요란하게 울려 퍼집니다. 이 소리들은 엄마의 마음속까지 들어와 찔러댑니다. 엄마는 그래서 “아들아,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55 비탄에 잠기신 엄마,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그러나 눈물과 피에 젖은 얼굴을 닦아 드리려고 하다가 주춤 뒤로 물러섭니다. 엄마의 얼굴이 멍든 상처투성이어서 알아볼 수도 없는 지경인데다 죽음의 창백한 그늘이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56 이제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얼굴로 겪으신 학대를 엄마가 겪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고통도 엄마의 것으로 취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러기에 입술을 움직이며 기도하시거나 불타는 가슴에서 한숨이 터져 나올 때에, 예수님의 갈증으로 타는 입술과 그 쓰디쓴 숨결을 그대로 느끼시는 것입니다. 57 가엾으신 엄마,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고통이 갈수록 더 커져 가고 있으니, 엄마의 손을 잡는 순간 제 눈에 못에 뚫린 상처들이 보입니다. 이 손을 통하여 엄마는 보시며 겪으십니다. 살인과 배반과 독성죄들과 온갖 악행들이 반복적으로 타격을 가하며, 상처를 넓히고, 점점 더 심한 아픔을 끼치는 것을! 58 저는 엄마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정녕 ‘십자가에 못 박히신 어머니’이시니, 발에도 못이 박혀 있습니다. 더욱이 엄마의 발은 못이 박히는 고통뿐만 아니라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도 함께 겪으십니다.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혼들 때문에, 그 많기도 많은 악한 발걸음들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그들을 뒤쫓으며 보살피십니다. 지옥의 불길 속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59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무치는 고통 속에 계신 엄마, 엄마의 모든 고통이 함께 모여 마음속에 울려 퍼지면서 일곱 개가 아니라 수천수만 개의 칼이 되어 찔러댑니다. 예수님의 성심을 엄마 안에 간직하셨으니 더욱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성심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내포하고 그분의 심장 박동 안에 모든 심장들의 박동을 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60 그리고 그분의 성심은 고동칠 때마다 “영혼들!”과 “사랑!”을 외치십니다. “영혼들!”을 외칠 때는 어머니의 심장 속에 온갖 죄들이 넘치도록 흘러들어 죽음을 겪으실 지경이고, “사랑!”을 외칠 때는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죽음과 삶의 끊임없는 교체를 겪으십니다. 61 십자가에 못 박히신 엄마, 엄마를 뵈니 너무 애처롭고 불쌍합니다!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들을 겪고 계시니 말입니다. 저는 제 몸이 혀와 목소리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엄마께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고통 앞에서 제 동정심이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62 그러므로 저는 천사들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부르며 그분들의 일치와 만족과 아름다움으로 엄마를 에워싸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하여 엄마의 그 격심한 고통을 동정하며 위로해 주시고, 그분들의 팔로 엄마를 부축하시고, 엄마의 모든 고통을 사랑으로 바꾸어 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63 비탄에 잠기신 엄마, 그러므로 이제 저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엄마가 겪으신 모든 고통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엄마의 이 쓰디쓴 비탄에 의지하여 비오니, 제가 죽을 때에 오셔서 도와주십시오. 제 영혼이 숱한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채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혼자 있을 때, 그때에는 오셔서 제가 일생 동안 자주 엄마의 동반자가 되곤 했던 일을 보답해 주십시오. 64 저를 도와주러 오시어 제 곁에 계시면서 원수들을 내쫓아 주십시오. 엄마의 눈물로 제 영혼을 씻어 주시고, 예수님의 피로 덮어 주시며, 예수님의 공로로 옷 입혀 주십시오. 엄마의 비탄과 예수님의 모든 고통과 업적으로 저를 아름답게 단장하시며 치유해 주시고, 그 힘에 의해 제 모든 죄를 사라지게 하시며 전적인 용서를 얻게 해 주십시오. 65 그리고 제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어머니의 팔에 받아 안고 망토로 감싸서 원수들이 못 보게 숨겨 주십시오. 그렇게 저를 안고 천국으로 곧장 데려가시어, 예수님의 팔에 안겨 주십시오. 사랑하올 저의 엄마, 약속해 주시겠지요? 66 이제 또 청하오니, 제가 엄마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임종 중인 모든 사람을 동반해 주십시오. 그들 모두의 엄마가 되어 주십시오. 이 마지막 순간은 큰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니, 그 누구에게도 엄마의 모성적인 임무를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67 끝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엄마를 떠나면서 청하오니, 저를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 안에 넣어 주십시오. 그리고 고통에 잠긴 저의 엄마이신 당신께서 저의 파수꾼이 되시어, 예수님께서 그분의 성심에서 저를 내치지 않게 해 주시고, 설령 제가 떠나고 싶어 하더라도 그럴 수 없도록 막아 주십시오. 이제 엄마의 모성적인 손에 입맞춤을 드리오니, 엄마는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 성찰과 실천 68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시고 큰 돌이 그 입구를 막고 있으니, 그분의 엄마는 이제 아드님을 못 보신다. 그런데 우리는 ― 우리는 그렇게 사람들의 눈길에서 숨어 있는가? 모든 사람이 우리를 잊어버려도 개의치 않는가? 거룩한 일들 속에서, 어떤 경우에도 불순종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이 거룩한 무심(無心)으로 지내고 있는가? 69 예수님께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그분께로 데려가는 그 거룩한 무심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는가? 우리는 항구한가? 이 항구함으로 그분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만큼 감미로운 사슬을 만들고 있는가? 우리의 눈길은 예수님의 눈길 안에 묻혀 있는가? 그리하여 오직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보는가? 70 우리의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 안에 묻혀 있는가? 그 결과 말은 오직 예수님의 혀만으로 하는가? 우리의 발걸음은 예수님의 발걸음 안에 묻혀 있는가? 따라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자취를 남기는가? 또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 안에 묻혀 있는가? 그리하여 그분의 마음이 사랑하고 갈망하시는 것을 우리의 마음도 사랑하고 갈망하는가? * * * 71 엄마, 예수님께서 제 영혼의 선익을 위하여 숨어 계실 때면, 엄마가 그분을 못 뵙게 되셨을 때 받으신 은총을 제게 주시어, 엄마가 무덤에 계신 그분께 드리신 모든 영광을 저도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72 오, 예수님, 저는 당신 자신의 음성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음성이 하늘에 사무치면서 모든 이의 음성 안에 울려 퍼지는 것과 같이, 제 음성도 당신 음성을 영예롭게 하면서 하늘에 사무치게 해 주십시오. 바로 당신 말씀의 사랑과 영광을 당신께 드리려는 것입니다. 73 저의 예수님, 제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심장의 고동으로 뛰게 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만족할 수 없겠습니다. 당신 심장의 고동으로 뛰어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저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당신께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오직 “사랑, 사랑…!”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하나의 외침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74 오, 저의 예수님,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서 영예를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행하는 모든 것에 당신 자신의 권능의, 사랑의, 영광의 인장을 찍어 주십시오. 감사기도 사랑하올 저의 예수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부르셨나이다. 그리고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고 대속하시며 고난 받으시고 더없이 감동적이고 힘 있는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나이다. 저도 그 소리를 들으며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려고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을 마땅한 일로 여기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께서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하시고 겪으신 모든 것에 대하여 수없이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심장 박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쓰라린 고통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러므로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 안에서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끊임없이 당신께로 ‘감사’와 ‘찬미’의 강물을 보내게 하시어, 당신의 넘쳐흐르는 축복과 감사의 은총을 저와 모든 이 위에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오, 예수님, 저를 가슴에 꼭 껴안아 주시고, 저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지성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시어, 오로지 당신을 향한 찬미가만이 제게서 끊임없이 솟아나게 해 주소서. *~*~*~*~*~*~*~*~*~*~*~*~*~*~*~*~*~* '수난의 시간들'의 기도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다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최초로 출판한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글이다. 성인은 이 글을 그 자신이 출판한 책의 ‘머리말’ 속에 게재했거니와, 우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바치는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등에 대한 것이다.(역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 주고, 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 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으로 공경하고,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 그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제7권 63장, 1906년 11월 9일) 2 … 내가 내 자애로우신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도 여기에 덧붙여 보면 이렇다.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는 내 수난에 대한 묵상을 그치신 적이 없었다. 이 거듭된 묵상에 의해서 그분 전체가 완전히 나로 충만하셨다. 내 수난을 거듭 생각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묵상에 의해서 나로 충만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제11권 49장, 1913년 3월 24일) 3 “딸아, 내 수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샘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샘도 더욱 확장된다. 그리고 샘솟는 물이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쓰이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의 샘도 그 사람 자신의 선익과 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쓰인다.”… “딸아, 네가 이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나는 이를 너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마치 내가 수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공로와 같은 공로를 준다. 이와 같이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게도 그 지향에 따라 같은 효과를 거두게 하겠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해 주리니, 내가 이보다 더 큰 상급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그들이 내 ‘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한 횟수만큼 사랑과 기쁨의 불화살을 쏘면서 내 앞에 자리하게 하겠고 그들 역시 내게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복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달콤한 황홀이 될 것이다!” (제11권 51장, 1913년 4월 10일) 4 (교회에는)… 대사(大赦)가… 붙어 있는 기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 기도에는 그것이 없으니 이를 바치는 이들은 얻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며 의아해하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매우 다정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대사가 붙어 있는 기도를 바침으로서 사람들은 하나의 대사를 얻는다. 그 반면에, 내 ‘수난의 시간들’은 바로 나 자신의 기도요 보속이며 온통 사랑이기 때문에 내 성심 깊은 데서 솟아난다. 내가 너와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치면서 얼마나 여러 번 세상에 내릴 징벌을 은총으로 바꾸곤 했는지, 너 혹시 잊어버린 것 아니냐? 그토록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기도인 만큼, 나는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에게 하나의 대사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도록 무한한 가치의 부를 지닌 한 움큼의 사랑을 준다.” (제11권 59장, 1913년 9월 6일) 5 『수난의 시간들』을 쓰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복된 '수난의 시간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이 내게는 기막힌 희생이다. 특히, 오직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어떤 내적 행위들은 글로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이 희생에 대해서 그분께서는 내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미롭고 다정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딸아, ‘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 네가 쓴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한 번의 입맞춤 ― 한 영혼을 네게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서, “제 사랑이시여, 그건 제게 주실 상급이겠지요? 하지만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이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나 자신의 뜻으로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 또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의지 안에 숨어들게 된다. 따라서 활동은 나의 의지가 하게 되므로 단 하나의 낱말로도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네가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게 할 작정이다.”… “이 ‘시간들’은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기도이다. 내가 지상생활 동안 행했던 일과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거기서 나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듣게 된다.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 모든 이의 선익을 갈망하며 모든 이를 위하여 보속하고 있는 나의 뜻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그 영혼이 행하고 있는 바를 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기 위하여 그에게로 거처를 옮기는 나 자신을 느낀다. 오, 도시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친다면 내 마음에 참으로 큰 기쁨이 일 것이다! 도시마다 나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몹시 분노하고 있는 나의 정의가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여움을 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보면, 어느 날 나는 천상 엄마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 (곧 ‘제24시간’) 기도를 바치면서 극심한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를 동정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묵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간혹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네가 그것을 빠뜨리지 않기 바란다. 내 엄마를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내 엄마는 몸소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삶을 다시 살고 계시는 것처럼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지상 생활 동안 내게 주신 영광과 사랑을 받으시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엄마가 다시 세상에 계시면서 어머니다우신 자상함과 사랑과 모든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나는 너를 어머니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면서 아주 부드럽게 “내 엄마, 엄마.” 하셨고, 또한 자애로우신 엄마께서 이 ‘시간’에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을 내게 속삭여 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따라 함께 하였다. 그때부터 예수님 은총의 도움으로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제11권 79장, 1914년 10월 ○일) 6 … “딸아, 네가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네가 알면 참 좋겠다. 게다가 너도 늘 이 기도를 반복하다보면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내 성인들은 내 수난을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을 받았는지를 깨달았고, 너무나 측은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으며, 내 고통에 대한 사랑으로 온 몸이 불타는 듯한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기도처럼 순서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야말로 내 생애와 내가 겪은 것의 편린(片鱗)들을 시시각각 너 자신 안에 보존함으로써 이리도 크고 특별한 기쁨을 내게 주는 첫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너에게 나는 매우 강하게 끌림을 느끼기에 시시각각 그것을 음식으로 주고, 같은 음식을 너와 함께 먹으며, 네가 하는 일을 함께 한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새로운 빛과 새로운 은총으로 풍부하게 보답해 주리라는 점도 알아 두어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땅에서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바칠 때마다, 내가 하늘에 있는 너를 늘 새로운 빛과 영광으로 옷 입혀 줄 작정이다.” (제11권 81장, 1914년 11월 4일) 7 늘 하듯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 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그런데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행하고 있는 영혼들과 접촉하면 못들이 뽑혀지고 가시들이 흩어져 사라지며 상처들이 아물고 침이 다 닦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저지르는 악이 선으로 보상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들과의 접촉이 나를 해치기는커녕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수난의 시간들’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욱더 의지하게 된다.” 이 밖에도 복되신 예수님은 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하여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이 ‘시간들’을 실행하면 나의 생각과 보속과 기도와 열망과 애정을, 심지어 내 가장 내적인 기질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나와 같은 사명을 수행한다. 공동 구속자로서, 나와 함께, ‘하느님, 당신 뜻을 이루려고 제가 왔으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Ecce ego, mitte me).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당신께 보상하며 응답하고,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하고 말한다.” (제11권 82장, 1914년 11월 6일) 8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온통 빛에 휩싸여 나타나셨다. 이 빛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매혹적이고 황홀한 모습이 되도록 그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놀라움에 잠긴 나에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겪은 아픔마다, 흘린 피 방울방울마다, 각각의 상처마다, 기도와 말과 행위와 발걸음 등등마다 내 인성 안에 빛을 낳았으니, 이 빛이 천상의 모든 복된 이들을 황홀하게 할 정도로 나를 아름답게 꾸몄다. 이제는 영혼이 내 수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며 보속과 또 다른 행위들을 할 때마다, 내 인성으로부터 빛을 끌어내어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미화된다. 그러므로 내 수난에 대한 생각을 하나 더할 때마다 그것이 그에게 영원한 기쁨을 가져올 또 하나의 빛이 된다.” (제11권 121장, 1916년 4월 23일) 9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내 인성을 수행하면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모아들였다. 즉, 나의 발걸음과 활동과 말을, 심지어 나의 탄식과 고통과 내 핏방울들을 요컨대 모든 것을 다 모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호할 책임을 맡고 나를 흠숭하며 내 모든 지시에 따르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들이었으니,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가져가려고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지금도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내 생애와 내 수난과 내 피와 내 상처와 내 기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그 사람 주위를 에워싸러 온다. 그의 말과 기도, 나에 대한 동정심, 그의 눈물과 예물을 모아서 나의 것들과 합하여 내 어좌 앞으로 가져옴으로써 나 자신이 지상에서 보낸 생애의 영광을 새로이 하려는 것이다. 이 천사들은 매우 큰 기쁨에 싸여 그 사람의 기도소리를 들으려고 공손하게 기다리며 함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들’을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여 경건하게 기도해야 한다. 천사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그의 입술에 주의를 쏟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 ‘시간들’은 사람들에게서 쓰디쓴 괴로움을 많이도 받고 있는 나에게 달콤한 음료 몇 모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받는 저 쓰디쓴 물의 엄청난 양에 비하면 이 단물은 너무나 적다. 그러니까 이 기도를 더 널리 전파해야 한다. 더 널리!” (제11권 132장,1916년 10월 13일) 10 “… 나는 네가 내 고통과 내 기도와 나 자신 전체를 네 것으로 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네 안에서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대에는 크나큰 보상이 요구되는데, 나를 자기 자신으로 삼은 사람만이 그것을 내게 줄 수 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보신 것, 곧 영광과 기쁨과 사랑과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한 전적이고 완전한 보상을 이 영혼들 안에서도 보고 싶다. 나와 엇비슷한, 같은 수의 다른 예수들을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수난의 시간들’ 중 매시간 기도를 바칠 때마다 각각의 행위와 모든 것 속에서 이 지향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보상을 얻지 못한다면, 아, 이 세상은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징벌에 징벌이 억수 같이 쏟아질 테니 말이다. 아아, 딸아! 딸아!” (제11권 138장, 1916년 12월 9일) 1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음을 알았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피를 뚝뚝 흘리시며 끔찍한 가시관을 쓰고 계셨다. 눈을 찌르는 가시들 사이로 간신히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딸아, 이 세상이 마음의 평형을 잃게 된 것은 내 수난에 대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비추어 줄 내 수난의 빛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 빛을 찾아내었더라면 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를 알려 주었을 것이니, 세상이 자기를 참으로 사랑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내 수난의 빛이 세상을 인도하면서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었을 것이다. 나약함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떠받쳐 주었을 내 수난의 힘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참을성 없음 속에서, 세상은 자기에게 평온과 고요한 자기 포기의 정신을 불어넣었을 내 참을성의 모범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찾아내었더라면 내 참을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 지배를 마땅한 의무로 여겼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세상은 고통을 지탱해 주며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었을 하느님 고통의 위로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죄 속에서, 세상은 그것과 마주 서서 그 안에 죄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었을 나의 거룩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아! 인간은 이렇듯 모든 것을 악용했다. 모든 것 속에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이 평형을 잃은 것이다…” (제11권 143장, 1917년 2월 2일) 12 …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다. 연옥 영혼들과 성인들로 보이는 많은 영혼들 가운데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말을 걸면서 얼마 전에 죽은, 내가 아는 한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이 ‘수난의 시간들’의 날인을 지니지 않고 연옥에 들어오는 영혼이 하나도 없음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혼들이 이 ‘시간들’의 호위와 도움을 받으며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또한 이 ‘수난의 시간들’의 동반을 받지 않고 천국으로 날아드는 영혼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간들’은 천국에서 땅으로, 또 연옥과 하늘에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이슬이랍니다.” … 나중에 나 자신 안으로 돌아오자 다정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것이 사실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이 ‘시간들’은 우주의 질서이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조화롭게 하고, 나로 하여금 세상을 멸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피와 상처와 사랑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두루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할 때에 나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나의 피와 상처와 열망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곧 내 생명이 거듭 재현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사람이 어찌 모든 선을 얻어 낼 수 있겠느냐? 네가 의아해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이 일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너는 유한하고 나약한 도구 노릇을 해 왔을 뿐이다.” (제12권 10장, 1917년 5월 16일) 13 내가 어떤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서 임종 중인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왜 걱정하고 있느냐? 내 수난에 대한 낱말마다, 각각의 생각과 연민과 보속 및 내 고통에 대한 기억마다, 그 모든 것이 나와 이 영혼 사이에 열리는 통신 전선들이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그것이 그만큼 많은 수의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그녀를 단장한다는 것을? 이 영혼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천했으니, 나는 내 피를 옷처럼 입혀 주고 내 상처로 단장하여 내 수난의 딸로 받아들이겠다. 이 꽃은 너의 마음 안에서 자라난 꽃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를 축복하여,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꽃으로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내 가슴에서 꽃 한 송이가 나와서 그분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제12권 55장, 1918년 7월 12일) 14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내 수난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겪은 것을 기억하거나 나를 측은히 여길 때마다, 내 고통이 그 영혼에게 새로이 적용된다. 내 피가 솟아나서 그를 잠그고, 내 상처들이 그를 치유하거나 단장한다. 그가 상처를 입고 있으면 치유해 주고 건강하면 아름답게 단장해 주는 것이니, 내 모든 공로가 그를 부유하게 한다. 그러니까 영혼은 매우 놀라운 장사를 하는 셈이다. 내가 행했고 겪었던 모든 것을 판매대에 놓아 이윤을 갑절로 남기니 말이다. 사실,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은, 태양이 지구에 빛과 열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베풀어지고 있다. 나의 업적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원할 때마다 내 생명의 열매를 받는다. 그러므로 내 수난을 스무 번, 백 번, 천 번 기억하면, 그만큼 더 많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내 수난의 모든 선익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영혼들과 소경과 귀머거리와 다리를 절고 있는 이들을 민망스럽도록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수난이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고통과 상처와 피는 허약함을 없애는 힘이요, 소경에게 시력을 주는 빛이며, 혀를 풀고 청각을 열어 주는 혀이고, 다리를 절고 있는 이들을 똑바로 걷게 하는 수단이며,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생명이다. 온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제가 내 생애와 수난 안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약을 무시하고 이 치료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구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치의 폐병에 걸리기나 한 듯 죽어 가는 인간의 처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비통하게 하는 것은, 교의나 신학 이론이나 역사 따위의 탐구에 매진하는 교인들이 정작 내 수난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수난은 번번이 교회에서 쫓겨나고, 사제들의 입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사제들의 말에 빛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니, 그들의 말을 들은 이들은 전보다 더 굶주린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제13권 26장, 1921년 10월 21일) 15 … “딸아, 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매우 내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 혼자 고통을 겪지 않고, 피조물이 ― 내 고통의 원인이며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에, 고통이 내게 더욱 감미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홀로 외롭게 고통을 겪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홀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내 고통을 맡길 사람도, 이 고통이 지닌 열매를 줄 사람도 없어서, 고통과 사랑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사랑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질 때 너에게 온다. 네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네가 나와 함께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인 것으로 겪으면서 내가 내 인성으로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의 수난을 현행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다만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먼젓번 것은 내 고통을 거듭 겪고자 나를 대신하는 내 생명의 행위이기에, 내가 신적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돌려받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나로 하여금 피조물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데, 너는 아느냐? 내가 어떤 사람 안에서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바로 내 뜻을 생명의 중심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안에서다. 나의 뜻만이 연속적인 행위들이 뒤따르지 않는 단일한 행위이다. 이 단일한 행위는 결코 변동이 없는 하나의 점에 고정된 듯 있고, 그 점은 곧 영원이다. 그러니 단일하면서도 원초적이고 끝없는 행위이다. 그 둘레가 무한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만물과 만인을 단 하나의 포옹으로 싸안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는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사업이 단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일한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들을 오직 하나의 행위인 것처럼 그 자신의 것으로 삼을 능력이 있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그 단일한 행위의 소유자이다. 그러니 내 수난 고통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동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18권 9장, 1925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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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장한상요셉과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저의 죽은 형제들, 곽판수와 박일조 마리아, 한재권, 곽무순, 양판영 부부, 양길영 부부, 양호영, 큰외숙모,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미카엘의 믿음의 배필, 후손들과 장 이냐시오를 비롯한 형제자매들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자비와 은총과 축복과 용서를 베푸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8월 15일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뜻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뜻 축일'을 이루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암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고통을 봉헌하며,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전쟁에서 죽거나 고통당한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이들의 영혼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구원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예수님의 뜻 안에서 안토니오 비오가 봉헌하는 미사와 기도와 바램에 축복과 구원과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예수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느님! 온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찬미 흠숭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 십자가 동산/길이 생겨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게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예수님, 저는 예수님 뜻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2024년에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이 온 세상에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피앗 볼룬타스 투아!♥ 2023.03.24. 성령 안수
2023.03.26. 번역할 영어책 받음. 송 요아킴 & 문 그레고리오 2023.04.25. garabandaltv
2023.07.18. 영어책 번역 2차 완성, 보냄. 2023.08.11. 할아버지!
2023.09.05. pa 오전 10시 마지막 미사. 2023.11.19. 청송성당 미사와 식사. 2023.11.19. pa로부터 번역할 파일 받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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