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0. 연중 제2주간 토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절로 되어 있는 짧은 본문입니다.
<첫 번째 절>(20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들어가고 섞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배추벌레가 배추를 먹으면서 배추색깔로 변해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절>(21절)에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여기에서, “붙잡다”(krateo)라는 말은 ‘손에 쥐다, 제지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친척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러 나섰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자신들의 손에 쥐고 조정하고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당신을 꼭 붙잡고 반박하였”(마르 8,32)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마르 8,33)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려고 붙잡는 이는 그가 비록 제자라 하더라도, 혹은 친척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의 행위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신 것이지, ‘나를 붙잡으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뿐, 붙잡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자기의 뜻으로 예수님을 붙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서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요한 20,17)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예수님께 붙들린 사람’,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앙드레 루프) 일 뿐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제지하시도록 승복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제지는 우리의 굴복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께 ‘붙들려’ 사로잡혀 따라가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붙드셨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매달려 있는 이들인 것입니다.
사실,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선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붙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에 붙들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붙잡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느님이 아니라 한갓 우리가 만들어 놓은 ‘우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미치신 분’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사로잡히신, ‘아버지께 미치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내가 배신하고 무관심할 때마저도, 언제나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진정,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마르 3,21)
주님!
당신께 사로잡힌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잡히게 하소서.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사로잡혀 살게 하소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에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조정에 승복하여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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