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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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22 | 조회수27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3주간 월요일] 마르 3,22-30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당신을 거스르는 이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학자들이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며 근거도 없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모함한 것이지요. 사람이 하는 행동을 잘 살펴보면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행동을 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 수 있는 법인데, 그들은 대체 왜 사랑에서 우러나온 예수님의 선한 행동을 악한 영이 초래한 활동으로 오해하고 왜곡하는 것일까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들의 마음 속에 악한 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보든 악에서 우러나온 ‘나쁜 짓’으로만 보이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깎아내리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내 마음 속에 악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남을 모함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면, 다른 이를 밟고 올라서서라도 나를 드러내고 과시하려고 든다면,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나의 마음이 악한 세력에 완전히 사로잡혀 지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그들은 왜 성령에서 우러나온 선한 행동과 악령에서 비롯된 악한 행동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성령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성령께서 자기 안에 들어와 활동하시기를 원하지 않는 겁니다. 성령을 따르면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없게 된다고, 세상에서 손해를 보며 바보 소리를 듣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와 하시는 일이 바로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병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나를 육체적 죽음으로 내몬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기 잘못을 성찰하게 하여 스스로가 죄인임을 깨닫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더 이상 욕망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내 욕심과 뜻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이들과 그리고 주님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율법학자들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과 일치되어 좋은 것들을 누린다한들 ‘나’가 사라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여, 자신들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일을 왜곡하고 그분을 배척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단호하고도 분명한 목소리로 경고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주님은 크신 사랑과 자비로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든 용서해주시지만, 우리 마음이 오그라들고 비뚤어져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활동을 거부한다면, 그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세상의 것들과 비교하고 왜곡한다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어둠의 상태를 즐기며 거기에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께 등을 돌리고 서 있기에, 그분의 자비를 불신하며 스스로 절망의 나락으로 깊이 빠져버리기에,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셔도 우리가 그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내 뜻을 앞세우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욕망에 휘둘리느라 성령께서 내미신 손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깨어있어야겠습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미워하는 이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를 청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화해와 일치로 이끄시는 성령을 따르는 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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