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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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1-23 | 조회수42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연중 제3주간 화요일] 마르 3,31-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이루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공동체를 예수님은 당신의 ‘참 가족’이라고 부르시지요. 그분의 참된 가족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님 주위에 둘러 앉아 있습니다. 각자가 마음 속에 지닌 구체적 소망과 바람은 조금씩 다르지만,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는 순수한 갈망으로 그분 사랑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겁니다.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알고 싶어서 그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죄를 용서받아 깨끗해지고 싶어서 그분 뒤를 따라다니며, 그 과정에 따르는 수고와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지요. 그렇게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처럼, 내 삶의 뿌리이자 줄기이신 그분께 믿음과 사랑으로 딱 달라붙어 있기에, 그들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사랑을 넉넉히 받으며 충만한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주님의 참된 가족이 되기에 부족합니다.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딴 생각’을 품고 있는 ‘동상이몽’의 상태는 주님과 참된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몸으로 주님과 함께 머무른다면, 이제 마음으로 그분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나 또한 바라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면 나도 함께 기뻐하는 ‘이심전심’의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시기에, 하느님의 뜻이 곧 주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곧 주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기쁘게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성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루고 계신 사랑의 일치에 참여하여 그분들의 참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찾아온 그분의 사촌 형제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분 가까이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따르려는 마음보다, 그분을 자기들 뜻대로 조종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군중들처럼 그분 사랑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앉아있지 못하고, 그 울타리 ‘밖에’ 멀찍이 떨어져서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이들을 단지 ‘혈연’으로 묶여 있다고 해서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주위에 앉아있던 이들을 둘러보시며 당신 ‘안에’ 머무르는 그들이야말로, 당신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그들이야말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진정한 사랑의 유대로 묶어주신 당신의 참 가족이라고 선언하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당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하신 것이지요. 그래야 그들의 속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그들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며, 그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려면, 그들과 사랑이라는 끈으로 완전하게 묶인 행복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예수님의 그 시선을 배워야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해도, 가족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내 뒤통수를 치고 비수를 꽂아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참되고 굳건한 사랑의 유대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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