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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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4-01-25 | 조회수51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24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우리말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긍정적인 감정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많을까요? 7:3의 비율로 부정적인 감정어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더군요. 부정적인 감정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 마음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비판은 두고두고 생각나는데, 어떤 이의 칭찬에 대해서는 쉽게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또 나를 향한 화가 난 얼굴은 지워지지 않지만, 나를 향한 미소 짓는 얼굴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액수가 똑같아도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우리입니다. 부정적 편향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긍정적 편향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심리 법칙인 ‘4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나쁜 일 한 가지의 강한 영향력을 상쇄하려면 좋은 일 4가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와 다투었다면 다정한 대화를 네 번은 해야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이 법칙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했으면 몇 번이나 상대에게 용서를 청하고 또 잘해야 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최하 네 번은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을 갖고서 관계 회복을 아예 포기하면서 거리 두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용서해 주십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늘 최고의 선물을 주려고 하십니다. 거리 두는 관계로는 그 사람하고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관계도 안 좋아집니다. 힘든 삶의 연속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처음에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 부제가 순교할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정적 편향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셔도,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행하셔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사도로 부르십니다. 이런 체험이 바오로를 변화시켰습니다. 부정적 편향에서 벗어나, 이제 긍정적 편향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있나요? 주님과는 거리 두는 관계가 아니라,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은 없다. (조지 산타야나) 사진설명: 성 바오로의 회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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