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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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1-29 | 조회수518 | 추천수8 | 반대(0) |
며칠 전 뉴욕에서 ‘노량’을 보았습니다. 이로서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전에 대한 영화가 막을 내렸습니다. ‘명량, 한산, 노량’입니다. 명량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이순신 장군이 승선한 장군선이 물살에 떠밀려 큰 바위에 부딪쳐 부서질 위험에 처했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배를 타고 장군선에 고리를 달아 물살이 약한 안전한 곳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장군이 백성을 사랑하니, 백성도 장군을 사랑하는 모습에 뭉클했습니다. 한산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학익진’입니다. 육지에서만 사용하던 진법을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도 사용했습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가두어 잡듯이,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으로 일본의 배를 포위하였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노량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북소리였습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순신 장군은 직접 북채를 잡고 북을 쳤습니다. 장군선에 울리는 북소리는 명나라의 군인과 조선의 군인들에게 커다란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북을 치는 과정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 계속 북을 치게 하였고, 노량해전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승리하였습니다. 그렇게 7년 전쟁을 끝이 났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람어로 말하는 모습이 3번 있습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에파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은 귀가 열려서 들을 수 있었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마르 7, 37)” 영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에파타’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열리고, 우리의 귀가 열려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게파’이다. 게파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바위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힘도 이 교회를 무너트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000년 시간이 흘렀어도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굳건하게 바위 위에서 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베드로 사도를 초대교황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었던 회당장의 야이로의 딸을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쿰(일어나라)’ 죽었던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소녀는 곧바로 일어나서 걸어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마르 5, 42)” 근심 때문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등감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지만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거짓된 자아는 참된 자아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2024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탈리타쿰’하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짓에서 진실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사랑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탈리타쿰’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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