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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성녀 아가타 순교자 기념(연중 제5주간 월요일): 마르코 6, 53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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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04 조회수157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6,54~55)


모든 성경의 시작은 구약 성경으로부터, 구약 성경의 시작은 창세기로부터, 창세기의 시작은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우주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에서 표출되는 말씀과 영으로 빛과 어둠, 하늘과 땅과 바다, 풀과 나무,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십니다. 창조하신 다음 하느님께서는 매번 반복해서 보시니 좋았다, 라고 감탄하십니다. 그런데 창조의 최절정은 바로 하느님 당신 모습 닮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고, 이로써 창조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살기 좋은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신 것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창조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이며 사랑의 넘침입니다. 

하느님께서 그토록 사랑으로 창조한 수많은 사람이 여기저기에서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니 그런 사람을 보고 많은 이들이 측은한 마음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할 뿐이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사람을 낫게 해준 소문만으로 알고 계시던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신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6,55)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병든 사람들을 찾아 두루 뛰어다녔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에게 이곳저곳을 두루 뛰어다니게 하였을까요? 그들이 그렇게 두루 뛰어다녔던 까닭은 먼저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고, 움직일 수도 없고 혼자 거동할 수도 없는 이웃의 몸져누워 있는 병자들을 서둘러 예수님께 데려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어떤 이득을 위해서 혹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서 분주하게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아프고 힘든 이웃을 먼저 생각해 주고 그들을 어떡하든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고,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세상이 된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좀 더 사람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의 아픔이나 어려움을 함께해 줄 이웃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질병으로 짓눌리는 사람에게는 큰 축복이었을까요! 치유가 일어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 그 하나만으로 살아갈 힘이 생기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당대의 현실 상황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여건보다 정치-경제-종교 등 모든 면에서 더 참담하고 각박한 상황이었는데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그들에게 그렇게 타인을 우선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강했을까 싶네요.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치유해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보시니 좋았다’라고 말씀하셨던 하느님의 심정은 많은 이들이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프셨겠습니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 가운데서도 아픈 이웃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동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내심으로 ‘참 보기 좋네’라고 생각하시면서, 아빠 하느님은 이들의 착한 마음을 보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활동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병자성사를 줄 때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상기시켜 주는 성서 말씀이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은 원로들을 부르고, 원로들은 그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5,14~15참조) 예수님을 알아본 그들의 믿음과 아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응하신 예수님께서 아픈 이들을 안수하자 마침내 그들 모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6,56) 구원받은 인간은 바로 예수님 구원 활동의 표지이며, 구원은 인간의 본래 모습의 회복이며 새로운 창조입니다. 사랑이 없는 창조를 생각할 수 없듯이 사랑이 없는 치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구원이고 구원은 생명의 온전함입니다. 

잘 아는 것처럼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불의 발견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사랑의 재발견이라고 봅니다. 이 사랑의 도화선이 되고 기폭제가 되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들 자신의 문제에 급급하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과 불평 그리고 불의와 부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야 할 길을, 진리를 몸으로 보여 주시며, 단지 살아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그 생명이 생명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자기라는 이기심을 틀에서 벗어나 타인을 사랑할 때 존재한다는 사실의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손수 보여 주셨고, 이제 그 사랑의 기운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라고 봅니다. 사랑만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이 파급되어 가는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에게 다큐멘타리 동영상처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모든 말과 몸짓과 옷을 통해서 퍼져나가는 사랑의 에너지는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고 마음을 치유하면서 모든 이가 구원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불이며, 이 사랑의 불은 모든 이의 이기심을 불살라 버리고 순수한 이타심을 타오르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실 경험적으로 자신이 가장 심적으로 힘들 때 자신 안에 갇혀 있기보다 역설적으로 자신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치료나 치유가 아닌 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되고 치유 받는 은혜를 숱하게 경험했고 목격했다고 봅니다. 복음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이웃처럼 우리 역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 힘겨워하는 이웃들을 돌보고 섬기면서 그들을 예수님께 두루 뛰어다니면서 데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은 ‘참으로 좋다. 참으로 고맙고 고맙다!’하고 말씀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이루신 일을 기뻐하시지만, 우리가 그 일을 한다면 더욱더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사랑하면서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합시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셨네.” (마태4,23참조/복음환호성)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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