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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영혼의 본향(本鄕)이신 예수님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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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05 조회수253 추천수6 반대(0) 신고

 

-집에서 집을 그리워함-

(homesick at home)

 

 

어제 저는 주일 미사중 연중 5주간의 본기도중 ‘주님의 가족’이란 말마디에 은혜 받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고 교회는 어머니이며 우리는 형제들’이라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말했으니 우리는 모두 주님의 한 가족에 속합니다. 바로 이 은혜로운 미사전례를 통해, 수도공동생활을 통해 늘 체험하고 깨닫는 진리입니다. 성인은 교회 어머니는 두 유방을 지녔는데 하나는 구약성경이고 하나는 신약성경으로 영혼은 끊임없이 여기서 말씀의 젖을 먹고 영적으로 성장한다 했습니다.

 

육신의 형제들보다 때로 가까이 느껴지기도 하는 주님의 형제들입니다. 저는 자주 제 어머니는 셋 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성모 마리아 어머니, 그리고 교회이신 어머니입니다. 고향이 고향일수 있음은 어머니가 계실 때입니다. 그래서 휴가때가 되면 육신의 어머니를 찾아 고향에 가듯 많은 이들이 고향의 어머니를 찾듯이 어머니이신 교회나 수도원을 찾습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은 평생 어머니이신 교회 안에 살고 있는 동시에 우리는 본향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됩니다. 교회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산책때 동요인 ‘어머니 은혜’를 참 많이 부릅니다. 저에게는 성가처럼 은혜로운 동요입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교회”이자 동시에 영원히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뜻합니다. 

 

“높고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높은게 또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하늘 저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나는 넓은게 또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바다 저보다도 넓은 것 같애.”

 

솔직히 말씀드려 매 끼니 걱정하는 어머니처럼 사제생활 35년 동안 강론 걱정 안할 날은 하루도 없었고, 꿨던 꿈중 대부분도 강론쓰는 꿈이었습니다. 저에게 날마다의 강론 걱정은 역설적으로 살게 하는 힘이었으며, 날마다의 강론쓰기는 하루하루 죽고 부활하는 파스카의 체험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어쨌든 강론 말씀을 통해 주님은 저를 끊임없이 영적으로 낳으시고 기르셨으며 당신의 사람이 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평생 어머니이자 스승이신 교회안에서 살고 있음은 얼마나 큰 은혜이며 축복인지요! 여전히 평생 살아있는 동안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끊임없이 낳으시고 기르시는, 또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교회입니다. 또 하나 제가 참 좋아하는, 늘 읽어도 늘 새롭고 좋은 얼마전에 인용했던 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법정 스님이 극찬했던 시입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누구나의 영혼이 공감하는 시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그리워하는,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역설의 중심에 계신 그대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자 연인이신, 스승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늘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분,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혼 깊이 모심으로, 영적 목마름과 배고픔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참으로 고맙고 놀라운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의 솔로몬은 성전에 주님의 계약궤를 모시고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차자 감격에 벅차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그러나 이는 솔로몬의 착각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나중에 헤롯대왕이 세운 거대한 건축물로 대체되었고 오늘날 통곡의 벽의 파편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자리엔 이슬람 사원이 있습니다. 마침내 참 영원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 제자들의 교회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미사가 봉헌되는 공동체 자리가 진짜 영원한 성전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성인들의 예수님 사랑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사랑이 그리도 깊고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선하다, 좋다”라는 뜻이 성녀 아가다는 루치아, 아녜스, 체칠리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네 동정 순교자들중 한분입니다. 데케우스 황제(249-251)때 그를 차지하려던 지방 관리의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며 동정을 지켰던 성녀입니다. 

 

얼마나 사랑을 받은 성녀인지 유모, 간호사, 종주조자, 시칠리아의 직조공, 카타니아 산악 안내인, 유리제조공, 불과 날씨, 처녀, 양치는 여자, 수유하는 여인들의 수호성녀입니다. 오늘 성녀 아가타 기념일 저녁성무일도 성모의 노래 후렴을 보면 얼마나 예수님을 일편단심 사랑했는지 흡사 성녀의 유언처럼 생각됩니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여, 당신은 내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겨내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여, 내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 중심으로 모여든 수많은 병자들의 무리들은 거대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모두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운” 영혼의 본향과 같은 예수님을 만나 치유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에 영혼의 본향이신 주님을 만나 치유받으려 참석한 우리들의 모습같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합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중 말씀과 더불어 성체를 모심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 “치유받다-구원받다”라는 말마디가 은혜롭습니다. 그리스어 “에소존토(esozonto)”는 신체적 치유 그 이상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그것은 전적인 구원의 체험, 단지 "복지(wellness)" 차원이 아니라, 온전함의 전적 체험이자 다른 말로 “귀향(歸鄕;coming home)”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바로 커밍홈(Coming Home)의 시간입니다. 커밍홈(Coming Home), 집에 돌아와 꿈에 그리던 영혼의 고향 예수님을, 어머니 교회를 만났을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이라는 것이며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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