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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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2-06 | 조회수261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마르 7,1-13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일본 고등법원 형사재판부에서 삼십 년 동안이나 재직했던 판사 한 분이 정년을 5년 앞둔, 조금 이른 시기에 사표를 냈습니다. 그는 굵직한 형사 사건들을 주로 맡아서 처리하던 공명정대하고 유능한 판사였지요. 그런 사람이 정년도 되기 전에 은퇴를 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분명 그가 유명한 로펌에 들어가거나, 변호사 개업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판사직에서 퇴직한 그는 전혀 엉뚱한 곳을 찾았습니다. 집 근처에 있던 요리학원을 찾아가 등록을 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그는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음식점을 내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도 빠짐 없이 학원에 나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으며 칼 쓰는 법, 야채 써는 법, 양념 다지는 법 같은 기초 요리지식을 열심히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년 만에 조리사 자격증을 따내더니 자신이 일하던 법원 근처의 두평 남짓한 공간에 자그마한 간이음식점을 열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판사였던 그이기에 알아보는 손님들도 많았지요. 사람들은 왜 '잘나가던' 판사인 그가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음식점을 열었는지 궁금해하며 물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재판관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형량을 언도할 때마다 가슴이 참 무겁고 아팠습니다. 아무리 '법대로' 하는 것이라지만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울부짖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참으로 힘들었지요. 재판관으로서 법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판결하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법대로 하는' 것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지금이, '재판관'이라는 명예를 누리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행복합니다."
그가 개업한 음식점 이름은 "친구"입니다. 그 이름 속에는 음식점을 찾는 손님들뿐 아니라 그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처럼 진실된 마음으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소박하게 함께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죄인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고 용서하며 끌어안으신 것도 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으셨던 예수님의 바람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율법'이나 '심판'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뜻'보다는 인간이 만든 '법'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에서 그런 마음가짐이 드러나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 이렇게 따집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지적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런 지적을 한 '이유'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들이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다가 병에 걸려서 아프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법대로' 하는데에만 신경을 쓰느라, 일반 백성들이 수많은 율법조항들을 지키느라 힘이 들든말든, 하느님의 주신 계명을 어겼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든말든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쉽게 지적했고, 쉽게 비난했으며, 쉽게 단죄했던 것이지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부족함과 단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법대로'만 하려는 차가운 태도로는, 비난과 단죄로는 우리가 지닌 부족함을 채울 수 없고 우리가 지닌 단점을 고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주변사람들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뜻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려는 따뜻한 마음만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단점을 고쳐서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우리'가 되게 합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주변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해주고,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 따뜻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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