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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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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08 조회수140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마르 7,24-30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상처부위를 통해 흘러나온 피가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여 응고반응을 일으킵니다. 이렇게 피가 찐뜩찐뜩해져 뭉치는 성질 덕분에 상처 부위에 ‘딱지’가 생기고, 그 덕에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을 막을 수가 있지요. 그렇기에 혈액이 뭉치는 성질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 성질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될 때가 있습니다. 혈액의 응고가 몸 ‘속’에서 이루어질 때 입니다. 기름진 음식이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피 속에 콜레스테롤이라는 성분이 많아지는데 그 성분이 몸 속에서 응고반응을 일으키면 혈액이 흐르는 중요한 동맥이 막혀버리는 위험천만한 일들이 생깁니다. 행여나 관상동맥이 막히기라도 하면 심장마비가 발생하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피의 응고가 어디서 발생하는가 하는 점은, 고통과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닥쳤을 때, 그 ‘내부’에 머물면서 이유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착한 사람인데 왜 그런 안좋은 일이 자신에게 닥쳤는지,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그런 ‘벌’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고,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고통과 시련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응고반응을 일으켜 큰 상처를 남깁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둔 하느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 증오와 미움으로 악화되어 스스로를 깊은 절망의 수렁 속에 빠뜨립니다.

 

 반면, 고통과 시련이 닥쳤을 때 그것을 자신의 외부에 두고 당당하게 맞서서 극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통과 시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일상의 다른 일들처럼 결국은 스쳐지나갈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기에 자기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힘들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주변 사람이나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쓸데 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 상황을 극복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누구에게라도 기꺼이 고개를 숙일 줄 압니다.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께서는 절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굳게 믿으며,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깁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방인 여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과 딸에게 닥친 시련에 당당히 맞섭니다. 왜 자기들에게 그런 ‘불행’이 닥쳤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왜 자기들만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분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깁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리라는 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주어지는 무시와 냉대를 기꺼이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인 자신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이지만, 그래서 주인의 밥상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개처럼, 자신에게도 ‘은총의 부스러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미천한 존재이지만, 주인집 식구가 먹고 남긴 음식만으로도 개들이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주어지고 ‘남은’ 은총만으로도 자신과 딸이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충분하리라고 굳게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 여인을 그토록 차갑고 매정한 태도로 대하신 것은 다른 유대인들처럼 그녀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셔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조건’이나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이들에게 거저 주어지는 ‘선물’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도 이방인 여인과 같은 믿음을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달라고 떼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복을 나 혼자 다 누리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은총과 복을 베풀어 주시도록 ‘은총의 통로’, ‘축복의 통로’로서의 소명에 충실하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떨어지는 ‘은총의 부스러기’만으로도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오천명의 군중이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만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음을 잊지 맙시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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