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 독서와 복음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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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2-09 | 조회수32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평소 매일미사의 전례를 따를 때 보통 보면 독서와 복음이 따로 따로 의미가 서로 연결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서로 연결해서 묵상하면 의미심장한 뜻이 숨어 있지 싶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을 묵상하기 앞서서 생각해봐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과연 복음은 2000년 전에 있었던 그 상황을 지금도 그 상황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입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우리는 반문을 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반문을 해보겠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입과 귀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기적사화를 단순히 알려주려는 그 사실만을 세상에 고지하려고 하는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기록을 했을까 하는 것을 묵상을 해본다면 답은 벌써 나오게 됩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그저 인간세상에 기적을 베풀고 우리는 그 기적 때문에 예수님을 신봉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 실제 우리가 그런 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는데 예수님의 죽음뿐만 아니라 공생활 자체가 너무나도 허망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해본다면 결론은 단 한 줄로로 정리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서 귀가 열려 있는 게 아니고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말을 하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귀가 열려 있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생물학적인 귀와 입을 말하는 게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과 하느님의 계명을 옳게 이해하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귀와 입이 열려 있게 되는 것이지만 말씀을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는 사람은 귀와 입이 열려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걸 실천하려고 하는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는 그 마음이 자신의 영혼을 동화시키려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 움직임에 반응을 하는 사람만이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고 이런 열린 귀가 있어야만이 그 귀로 들은 말씀으로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에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입도 될 수 있고 그렇게 됐을 때 그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제대로 열린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냥 예수님은 한낱 이 세상에 단순히 병자의 몸을 고친 기적만 이룬 분으로만 전락시키는 결과가 되고 또 그렇게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평생 들을 수 없는 막힌 귀와 입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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