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6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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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2-11 | 조회수363 | 추천수7 | 반대(0) |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A smooth sea never made a skilled mariner.’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있습니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인내는 쓰지만 결과는 달다.’고 말하곤 합니다. 성서는 고생 끝에 즐거움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갖은 고생을 하였지만 늦은 나이에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80이 넘은 나이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물, 가족,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욥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했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실지라도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 모세, 욥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참된 행복을 선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우리의 신앙에는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성탄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축하하면서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마리아는 시메온 예언자의 말을 가슴에 깊이 담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40년이 된 한국교회도 의로움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100년 넘게 박해를 받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습니다. 그 박해와 시련을 견디어 냈기에 우리는 103위 성인을 공경할 수 있고, 124위의 복자를 모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표징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표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혈연입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학연입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재물과 권력입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표징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나자렛에서 자란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는 표징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과 함께 하시던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는 권력과 재물을 보여 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표징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오신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표징은 원수까지도 받아들이는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표징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표징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이 보여 주려는 표징은 무엇일까요? 화려한 건물과, 체계적인 조직, 법과 교리를 통해 드러나는 권위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던 표징은 아닙니다. 우리는 ‘겸손, 용서, 희생, 사랑’의 표징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표징이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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