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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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2-12 | 조회수16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조건을 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들어주시면 내가 당신을 믿을텐데.. 주님과 협상하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없어도 그분은 영원 불변하시고 우리의 칭송이 없어도 그분은 존엄하신 분입니다. 나 없어도 그분은 그 자체로 영광 속에 살아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조건을 달아서 그분이 나를 만족하여 주시면 내가 당신을 믿겠다는 그런 망상과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의 원인은 교만입니다. 하느님 보다 나를 위에 놓는 그런 교만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희생과 봉사 하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그 희생과 봉사로 인해서 당연히 받을 권한이 있다는 그런 교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그분은 나 없이도 불사불멸하신 분입니다. 특히나 내가 곤경에 빠질 때 하느님을 원망하고 그분을 향해 날을 세우고 왜 나를 이렇게 곤경 속에 놓는 것인지 원망하고 조건을 내세우고 결국은 신앙을 잃고 마는 그런 절망으로 놓이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으신 분입니다.내가 하느님의 아들인데 내가 곤경에 빠지고 십자가 죽음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주님은 묵묵히 그 잔을 받으시고 돌아가신 분입니다. 시련과 고통의 순간에 하느님의 뜻을 찾으신 분이었습니다.
참 이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이번 설에 저를 돌아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설 아침에 90세 늙으신 큰아버지 찾아가서 세배 인사드리러 가는데 그분의 주소를 잊었습니다.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리면 되지? 귀가 많이 않좋으시고 전화를 받지를 못하십니다. 그분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모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자주 찾아가서 인사하시는 분이 고모입니다.
그래서 전화를 드리고 주소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고모가 매몰차게 전화를 받으시고 새해 첫날부터 아주 심한 말씀을 연거푸 하시는 것입니다. 한번의 전화만으로 끝이 아니고 계속 전화 주시고 저에게 쌍스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굉장히 마음이 상했습니다. 고모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분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청하신 적이 있었고 당시 저는 백수로 있었습니다.
집 있고 돈 있는 사람이 당연히 내가 고모인데 도움을 청하면 들어주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백수 상황이었고 큰 돈을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언제 갚을지 모르고 해서 돈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많이 서운하신 모양입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상대에 대한 묵상이 없이 매몰차게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시는 고모의 말씀에 마음이 상해서 술을 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미사 참례는 교중 미사는 못하고 저녁 미사를 참례하였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일어 설 수 없었습니다. 참 미숙한 사람 최원석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미사 참례를 하는데 손님 신부님이 미사를 거행하셨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이 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수도회 소속인데 장상 신부님이 수도회 소속 식구들 이름과 현재 사진을 찍어서 수도회 내부를 관리하도록 소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이 현재의 사진을 주지 못하고 20년 전의 사진을 주더랍니다.
그 순간 그 수사님에게 많이 화가 났다고 해요. 그런데 가만히 성체 앞에서 그 수사님을 두고 묵상하셨다고 합니다. 현재 몸이 불편하고 힘든 모습을 신부님에게 찍어서 드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워서 그래서 이전 사진을 준것 같다고 묵상하셨다고 해요. 어느 순간에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모습을 저는 그 순간 그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고모에게 듣기 싫은 소리 들어서 마음이 많이 상해 그것을 술로 해결하려는 마음과 신부님의 묵상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것입니다.
다시금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어느 순간에도 하느님 뜻을 찾고 하느님 영광 드리고 우리 주님과 같이 인내하면 우리는 정화의 과정을 통해서 순수 영혼으로 변해서 구원으로 넘어 갈 수 있습니다. 성화된다는 것은 내가 정화되어서 순수한 영혼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독서에서 어려운 순간이 오면 인내를 하고 인내를 통해서 성화된다고 전합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잠시 나를 내려 놓고 주님 영광이 무엇인지 묵상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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