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믿음은 표징보다 겸손에서 / 연중 제6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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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2-12 | 조회수20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믿음은 표징보다 겸손에서 / 연중 제6주간 월요일(마르 8,11-13) ‘자꾸만 읽으라니까.’ 읽는 성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지만, 읽다 보면 그저 평범한 게 어느 날 칼날이 되고 따듯함이 될게다. 은총은 그렇게 갑자기 오리라. 그러니 앞서 가는 삶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뒤에서는 미는 신앙생활이 되자. 신자들은 가끔씩 ‘이러이러한’ 신부님 때문에 성당에 못 다니겠다나. 신부님들도 마찬가지라나. 이러저러한 교우님들 때문에 사제 생활이 쾌나 어렵단다. 돌아보면 모두가 다 조건을 다니까. 믿음의 길 역시, 무거운 짐 지고 먼 길 가는 것과 같을 게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소중한 믿음은 열린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인다.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 예수님과 논쟁하였다. 그분을 시험코자 표징을 요구한 거다. 그분께서는 깊이 탄식하며 이르셨다. “어째서 이 세대가 표징을? 내가 진실로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왜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지? 마음 닫힌 이는 그 무엇도 못 믿는데.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마음 닫힌 그들은 설령 표징을 보여줘도 또 다른 트집으로 거부할 게다. 눈 들면 우리는 늘 기적 같은 세상에 산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침 태양, 푸르른 하늘과 구름, 저녁노을, 밤하늘의 별과 달, 만난 사람 등, 일상의 모든 게 기적 아닌 게 없다. 마음열고 보면 모든 게 경이롭다. 이런 눈 없으면 주님께서 우리 삶에 주시는 이 은총도 볼 수 없다. 신앙은 초자연적 현상이나 기적 체험으로 깊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도 기적을 기대하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저들 바리사이와 같을 게다. 사실 우리는 지금껏 주님께 충분히 받았다. 이제는 그저 주님보고 따를 때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며 조건을 단다. “돈 벌게 해 주면 성당 다니겠습니다.” “사업이 성공하면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다. 이런 요구는 아니더라도 다들 이와 비슷한 요구다. 이에 주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신다. 신앙은 조건 단다고 바뀌는 게 아니기에. 믿고 맡기면 어느 날 이루어지는 게 믿음인데도. 그러니 늘 청해야 할 건 인내와 절제다. 참지 못하고 객기 부리는 마음을 조절하게 해 주십사는 거다. 여태 투정 부리는 신앙이라면 바꾸자. 이렇게 해 줘야만 믿겠다는 건, 조건 다는 거다. 이건 성숙한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답답한 건 우리지 주님이 아니니까. ‘하도 그러니 참석하겠다.’ ‘하도 저렇게 말하니 들어 주겠다.’ 이는 끌려가는 신앙생활이다. 주일 미사 ‘참석해 준다.’라는 자세로 임한다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할지? 강론을 ‘들어 준다.’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야 어떻게 깨달음이 올지? 기적에 대한 표징을 요구하니까 예수님께서는 탄식하며 거절하신다. 그분께서 베푸신 기적의 참된 의도는 감탄 자아내는 신비 자체를 드러내는 게 않을게다. 예수님께서는 그 외적 기적에 감춰진 내적 신비를 깨닫기를 진정 바라셨다. 이러니 기적만 바라는 이에게는 참된 기적 같은 기적은 없다. 완고한 이는 어둠에서는 볼 수 있으나, 햇빛 아래에서는 볼 수 없는 야행성 부엉이 같다. 그는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일에서는 꽤 똑똑하지만, 진리의 빛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 뜬 장님이다. 소중한 건 열린 마음의 눈으로 봐야만 보인다.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을 때,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바로 볼 게다. 믿음의 힘이 얼마나 크냐? 예수님께서는 이르셨다. 작은 믿음으로도 산이 바다로 옮겨진다고. 그렇다. 믿음이 우리 신앙 선조들로 하여금 박해와 시련을 이겨 내도록 했다. 우리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할까?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지닌 믿음을, 하느님께 겸손하게 청해야 하지 않을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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