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내면의 것을 바른 눈귀로 / 연중 제6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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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2-13 | 조회수21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내면의 것을 바른 눈귀로 / 연중 제6주간 화요일(마르 8,14-21) 어쩌면 신앙생활에도 장애물은 있기 마련이다. 교우들과 주고받은 상처거나 성직자에게서 받았던 아픔 등이 그것이다. 자신 안에서 이것을 이해하고 제거하려 애쓸 때에야, ‘참 믿음’은 비로소 시작된다. 자꾸 부풀어져 내 신심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정말 문제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마음이면서도 자기가 모르는 마음이 있다나. 그 마음에 은총이 머무르게 해야만. 주님 빛이 햇볕처럼 스며들게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무의식중에라도 선한 생각을 많이 하도록 하자. 그때에 제자들이 빵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빵이 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분께서는 이를 아시고 이르셨다. “너희는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느냐?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분부하신 것은, 빵의 기적을 통해 깨달은 사랑의 기적보다는, 빵 자체를 탐닉하는 탐욕을 경계하고 있기에. 그리고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에 빠지지 말라신다. 사실 ‘누룩’은 부패와 타락의 근원을 가리키는 표상으로, 라삐들에게는 인간의 악한 성향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예수님에 대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악의를 가리킨다. 진리는 거짓과 기만으로 생긴 편견과 선입견의 누룩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다. 깨달음은 바리사이식의 지적 충만감에서 오지 않고, 내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좋은 누룩을 심어 가는 오랜 수련을 통해서 온다. 처음부터 악하게 사는 이 없다. 선한 의지 가진 이도 마음에 혼란을 부추기는 일들을 만나면, 나쁜 마음이 곧장 일어나기도.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으로 삶을 뒤흔든다. 누룩은 빵을 부풀리는 데 필요한 생필품이지만, 죄로 이끄는 탐욕의 씨앗이면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누룩은 술의 원료로 반죽을 부풀게 한다. 위선도 담아 두면 부풀어진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건성이 아닌 진심으로 하자. 살다 보면 마음에 담겨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들이 많다. 이미 지나간 것인데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상대는 잊었음에도 나는 잊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속의 누룩이 부풀어진 것이리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 표징을 보여 달란다. 그들 말에서 드러나듯이, 누룩이란 억압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해방을 하느님 구원으로 여기는 부패한 신앙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또 그것은 권력과 재력으로 현세적 안락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인간성을 상징한다. 인간 본성의 타락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현세적 누룩이리라. 우리 삶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신비가 일어난다. 하느님 사랑과 은총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 일어나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미처 그 내면서 생기는 것을 보지 못한다. 또 현실에 집착하다가 지난 일을 잊어버리기도. 이렇게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볼 수 있는 눈과 들리는 소리를 잘 듣게, 귀를 하느님께 돌리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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