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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2-14 | 조회수459 | 추천수8 | 반대(0) |
오늘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습니다. 먼저 시를 함께 감상하면 좋겠습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2000년 전에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시몬,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입니다. 그들은 운명처럼 예수님을 만났고,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제 그들은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의 충만함과 희열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삶의 고난과 절망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하였고,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선생님이나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매력적이고, 군인이 입는 제복도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아버님은 교직에 계시지는 않았지만 사범학교를 나왔고, 고모부도 사범학교를 나와서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였습니다. 그런 제게 예수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부르시지는 않았지만, 운명처럼 저는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신학교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하는 신부님의 모습도 멋져보였습니다. 성소(聖召)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없이 본당 신부님께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성적표를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과 면담하였습니다. 당시 쉬고 있던 아버지가 성당에 나오는 조건으로 허락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신학교에 입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뒤로는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 하였습니다. 사제가 된지 3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교사나 군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제가 선택한 사제의 길은 교사와 군인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사제는 강론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는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선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군인은 전선에서 적을 막아내고, 국민을 보호합니다. 사제는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교우들이 하느님께로 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사제의 직무에는 교사와 군인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선택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계명과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택하면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하느님과 멀어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합니다. 사제는 서품 받기 전에 3가지 서약을 합니다. 독신서약, 신앙고백, 교구장에 대한 순명입니다. 사제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독신으로 살고, 자신의 뜻이 아닌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 교구장의 뜻을 충실히 따른다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는 선택함에 있어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가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도 “나를 따르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달콤한 열매만 찾아가는 선택은 당장은 좋겠지만 그 끝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난도, 질병도, 일찍 죽는 것 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치고 도와주시어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 마치게 하소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듣고,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키면, 너희가 살고 번성할 것이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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