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늘 제1독서 아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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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16 조회수143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우리는 제1독서를 평생 매일 묵상해야 할 중요한 신앙의 푯대로 삼아야 할 내용입니다. 그저 국어책 읽듯이 그냥 읽어야 할 게 아니라 말씀 하나 하나 꼭꼭 씹어서 그 말씀이 각자 자신의 영혼에 녹아 스며들어야 할 정도로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헛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자신에게 알려주시는 하나의 경종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경종과도 같은 말씀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게 다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오늘 이 메시지는 조금 성질을 달리 합니다. 이 조금의 차이를 만약 이해할 수 있다면 그분은 이미 신앙에 있어서 거의 어느 정도 성숙된 신앙을 가지려고 무진장 노력을 하는 신앙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부터는 조목조목 한번 말씀의 풀이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어떤 말씀으로 대체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곰곰이 묵상해봅시다. 먼저 날마다 나를 찾는다는 말씀에서 이건 액면적인 뜻도 중요하지만 이 말씀 뒤에 숨어 있는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숨은 의미의 현대판 해석은 우리가 매일 예를 들어 미사를 참례하며 전례를 참석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를 하면 좋을 듯합니다. 마치 매일미사를 실행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러면서 갈망을 할 것입니다. 나는 이처럼 하느님을 자주 만나려고 하는 열심한 신자처럼 자부심도 가지고 또 그렇게 하느님께서도 여겨주실 것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을 품고 말입니다. 이러한 원의는 그 자체로서는 아주 좋은 것은 분명 맞습니다.

 

이 말씀에 이어지는 제1독서 말씀에 우리는 이런 마음이 정말 진실된 마음이면 하느님께서도 얼마나 우리를 좋게 봐주시겠습니까마는 이런 마음 뒤에 은근히 독버섯과도 같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마음자세에 대한 하나의 경종입니다. 마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에서처럼 바리사이와 같은 우쭐한 마음처럼 말입니다. 자기는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어쩌면 착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착각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자기 스스로는 그게 착각인지도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1독서 3절에서는 보면 물론 단식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이건 순전히 단식 본래의 말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하는 여러 재계 중 하나처럼 말입니다. 가령 단식도 있고 금육도 지키고 교무금도 내야 하고 주일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신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계명이든지 재계든지 그게 지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생활을 하는 선에서 그치면 상관없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모습에 대해 좀 더 언급을 해 주고 또 잘 봐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심리 말입니다. 만약 매일미사를 한다고 할 때 그냥 내가 하느님과 깊은 신앙을 가지기 위해 하느님과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가지는 것에 초점이 중요한데 이러면서 남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그렇게도 신심이 좋으신지요 매일미사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하는 그런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심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남들이 그렇게 알아주었으면 하는 심리도 내면에 깔려 있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내뱉을 수 있는 말이 3절과도 같은 말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백프로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신앙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자문해본다면 비율이 아주 근소할 것입니다. 정말 그런 사심 없이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수준에 도달하려고 하려면 아직도 구만리입니다. 이어지는 4절의 말씀이 현재의 신앙인에게 또 하나의 경고와 같은 느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려고 성당을 다니면서 허구한 날 주위 형제들이랑 싸움이나 하면서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을 향한 일침처럼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5절에서는 그럼 어떻게 나(하느님)를 사랑해서 마치 성당에 온다면 어떤 자세로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듯한 말씀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시사해주는 것은 6절에 보면 나옵니다. 이건 단적인 예입니다. 단식이라는 것은 마치 단순히 음식을 끊는 그런 게 단식의 의미가 아니고 그 근본 의미는 남을 얽어맬 수 있는 그런 것을 끊어주고 가난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기꺼이 자선을 베풀고 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눈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이 돼서는 안 돤다고 하시는 뉘앙스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전혀 없지 않다고 말하긴 힘들 것입니다.

 

웃자고 하는 소리이고 또 이해의 편의를 들고자 하는 예입니다. 이건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께서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여러 차례 예를 든 사례입니다. 로마 유학시절 고달픈 월급 같지도 않은 돈을 받는 입장인데 학교를 가면서 거지를 보면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고 싶어서 로만칼라를 뺐다는 말입니다. 마치 이런 게 오늘 제1독서 7절과도 같은 말씀의 의미입니다. 7절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은 당연한 것이 되겠죠.

 

이처럼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그게 진짜 나를 믿고 따르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성당에만 나온다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목소리로 우리는 대체해서 이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독서 후반부를 묵상하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살아야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다는 말씀의 의미도 은유적으로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린 이런 미묘한 말씀의 뉘앙스를 잘 느낄 수 있어야 하느님의 말씀을 정말 골수에 녹여 그 말씀이 내 영혼을 감돌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독서 마지막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되새기는 것을 끝으로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냥 주님, 주님하며 부른다고 해서 대답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정말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인지라 때로 넘어지긴 하지만 그렇다손치더라도 불쌍한 이 영혼 외면하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면 그 자비의 힘에 의지해 끝까지 끝까지 달려가겠습니다와 같은 굳은 마음을 다잡아가며 하느님을 찾으며 부르짖는다면 그때 하느님께서는 저희의 그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거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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