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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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2-16 | 조회수16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마태 9,14-15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어떤 형제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지 않는다는 조건을 채운 것이니 저는 단식을 자주 하는 것이고, 따라서 재의 수요일이나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지켜야 하는 단식재를 따로 지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형제님의 주장은 옳은 것일까요? 단식의 ‘조건’을 충족했는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건 어떤 ‘마음’으로 단식하는가이지요. 챙겨먹기 귀찮아서, 습관적으로, 그러는게 편해서 밥 한끼를 안먹는다면 그건 신앙적 의미의 단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식욕이라는 기본적 욕망을 절제하기 위해서, 주님 수난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마음으로, 단식하여 아낀만큼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기 위해 밥 한 끼를 굶는다면 그건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참된 의미의 단식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렇듯 단식은 단순히 밥을 굶는 것이 아니라 그럴 이유가 있어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 참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질책하는 단식의 ‘나쁜 예’는 그와 거리가 먼 모습이지요. 자기들이 끼니까지 걸러가며 하느님 가까이 있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자기들의 노력을 왜 알아봐주지 않으시냐고, 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지 않으시느냐고 하느님을 재촉합니다. 자기들이 단식이라는 재계를 지키는 것만 챙길 뿐, 그로 인해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해야하는 일꾼들이 밥도 못 먹고 고생하게 되는건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누가 단식을 더 자주하는가의 문제로 남과 나를 비교하고 누가 더 의로운 사람인가를 따지며, ‘왜 너는 단식을 하지 않느냐’는 문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시비를 걸다 다투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며 따지듯 묻는 요한의 제자들이 그런 모습입니다. 자기들은 자주 단식하느라 고생하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즐겁게 어울리며 먹고 마시는 모습이 꼴보기 싫고 억울했던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밥을 먹지 않는 행위에 집착하지 말고, 단식을 하는 마음가짐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단식을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해야 그 참된 의미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식은 곡기를 끊는 고통을 견디려고 하는게 아니라,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악의 유혹을 끊어버릴 수 있도록 내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단식은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 배고픔으로 괴로워하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단식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내가 바라는걸 들어주지 않는 주님을 원망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지를, 그분과 함께 하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느끼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이처럼 ‘열매 맺는 단식’을 하면 좋겠습니다. 조건을 따지기보다 마음에 집중하고, 음식만 끊을게 아니라 욕망을 끊으며, 욕망을 끊는 수준에 그치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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