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유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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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4-02-18 | 조회수15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유혹하시는가? 즉 하느님의 유혹(?)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 기간이 끝나자 사탄이 다가와서 세상의 권세와 돈과 모든 것을 준다고 하며 하느님의 것을 빼앗으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40세를 세상의 것에 혹하지 않는 불혹이라 불리우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 누가 이 세상을 다준다해도 당신이 없으면 나는 나는 못살아.수 많은 세월이 흐른다해도. 당신만을 당신만을 기다리며 살아갈거야... 욥기에 있어서는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죽이지는 말고 할 것 다 해 보아라.” 라고 하셨고 이에 사탄은 욥의 모든 것들을 파괴시켰지만 욥은 절대로 하느님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가지만을 들어보아도 하느님께서는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유혹자인 사탄에게 세상을 한 번 맡겨본다는 것이지 직접 하느님께서 유혹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욥은 사탄이 그렇게 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묵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40일간의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어떻게 삼위일체로서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 유혹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느님께서 하시는 유혹이라고 하는 무리한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의 하느님과 같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나라를 이룩하려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띠고 오신 것입니다. 즉 구원자로서 예수님이십니다. 당연히 아버지와 같으시다고 하시지 않는 예수님의 겸손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야고보서에서 옮겨 와 보고자 합니다. 야고보서는 어느 일정한 사람에게 보내는 서간이 아니라 공동체에 보내는 글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 서간의 저자는 누구인가로부터 야고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다고들 합니다.
다음은 야고보서 서간의 말씀입니다. 유혹을 받을 때에 “나는 하느님께 유혹을 받고 있다.”하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고, 또 아무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저마다 악의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유혹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의 화관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묵상 시간은 길었으나 짤막하고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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