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설교가 회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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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2-21 | 조회수8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사람이 회개를 한다면 스스로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외부의 어떤 자극에 의해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걸 일으키는 요인은 분명 외부의 힘입니다. 외부의 힘이 내부의 어떤 마음이나 정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한번 묵상하고자 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죄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게 죄의 인식입니다. 죄를 짓고서도 그게 죄인지 모른다면 회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었을 때 그게 죄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죄를 지었을 때 외적으로 표출됐다면 그 상황을 지적해줘서 죄라고 인식을 할 수도 있지만 죄라는 것은 외부에서는 절대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나 생각으로 죄를 지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말과 행위는 외부에서도 알려줘서도 알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냉정하게 말하면 스스로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죄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분명 죄의 인식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게 이 부분입니다. 죄에 대한 인식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게 자신의 양심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악인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인간 깊은 내면에는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양심의 근원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로 우리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는 인간 세상의 말도 있듯이 이때 이 인간의 탈이라는 말은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바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속성인 dna 같은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에는 우리가 죄를 짓게 됐을 때 어느 누가 설령 보지 않았다고 해도 양심이 괴롭거나 하는 게 바로 하느님의 속성은 죄라는 환경과는 존속할 수 없는 dna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같은 dna가 내재돼 있어서 당연히 우리 마음 속에서는 이질적인 두 환경이 마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인 기전반응입니다. 우리는 이 양심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찰의 과정입니다. 내가 내 내면을 들여다봐야 지금의 내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들여다본다고 해서 성찰이 될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원죄에서 파생된 지금 우리의 잘못과 상관없이 죄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성은 감각이 예민하지 못하고 무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죄성에 물든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아주 치밀하게 내면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걸 찾아내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바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입니다. 복음입니다. 또한 오늘 복음 말미에 나오는 설교도 될 수 있습니다. 설교가 무엇인가요? 설교라고는 하지만 이 말은 단어 원래의 의미에만 매몰돼 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미사에서는 신부님의 강론이 될 것이고 레지오에서는 수녀님의 훈화도 될 것이고 피정에서는 신부님의 영성지도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게 전적으로 회개를 할 수 있는 전적인 요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 하나의 요소이고 또 영향을 지대하게 미치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는 전례적으로 사순시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어디 회개는 사순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사순 때는 항상 회개 하니 이때만 회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회개는 우리가 하느님나라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보다 더 철학적인 표현은 우리가 우리 마음에 죄를 가지고 있는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습니다. 신부님의 훌륭한 강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을 터치하는 것입니다. 한 번 터치하고 두 번 터치 하다 보면 그게 이젠 터치의 수준에서 각성의 수준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수준이 됐을 때 비로소 회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여정에 말씀과 함께 지속으로 친해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내 영혼을 자극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말씀 거울에 내 영혼을 비추어 성찰해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아마 이 지상에서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최종 결론입니다. 결국 내 영혼을 살리는 길은 말씀인 성경입니다. 보통의 경우 3만원 정도에서 5만원 선에서 하는 성경 책 하나가 내 영혼을 살릴 수 있고 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그 속에 있고 천국을 갈 수 있는 지름길도 그 속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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