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가톨릭만이 하느님의 교회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 |||
---|---|---|---|---|
이전글 | ■ 2등의 아름다움 / 따뜻한 하루[331] |1| | |||
다음글 | 베드로와 바오로 |2|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2-22 | 조회수15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가톨릭만이 하느님의 교회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마태 16,13-19)
고대 로마는 2월 22일에는 가족 중 죽은 이의 기억으로 빈 의자를 마련해 놓았다나. 그리고 관습상 이날 베드로와 바오로의 두 사도 무덤서 공경 예배를 드렸단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 자유 선언으로 6월 29일이 신앙의 선조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기념일로 정해지면서, 이 날은 베드로를 교회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만 남았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며 답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그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베드로는 순박한 여느 어촌의 어부였고 본디 이름은 시몬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반석’이란 뜻으로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다. 튼튼한 머릿돌로 여기신 거다. 그런데 세속의 눈으로만 본다면 사실 베드로는 그다지 반석과 같은 인물감이 되지 못한다. 반석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가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다. 믿는다면서 물 위를 곧장 걷다가도, 분심이 들어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분은 그를 반석으로 삼으셨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너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열쇠도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 세 가지 핵심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허락하신 권능이 베드로라는 수제자를 통해 사도와 교부를 통해 계승하고 그들에게 용서의 권한을 주신다는 거다. 이는 넓은 뜻에서 ‘교황권의 인정과 회개를 전제로 한 용서의 권능’이 교회 전체에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곧 베드로의 후계자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만이 ‘그분 권능에 대한 정통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에 베드로는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손수 알려주신 답이다. 그렇다면 과연 베드로가 위대해서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소관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만이 답하실 몫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나약하고 의심 많은 베드로를 당신의 지상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다. 이를 예수님을 통해서 제자들과의 문답으로 직접 확인시키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그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악과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는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은사가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다. 이게 지금 우리의 가톨릭교회이다. 그래서 이런 약점과 모순투성이에도 교회는 권위와 아름다움을 갖는다. 성령께서 늘 함께하시기에 그렇다. 우리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구성원이다. 우리역시 반석이 될 수가 있다. 그러기에 이제는 예수님의 그때 그 물음에,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