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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마태오 5, 20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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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2 조회수139 추천수2 반대(0) 신고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5,20)


예전 가수 ‘나애심’ 씨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때론 우리는 어둡고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자신 앞에 스스로 부끄러웠던 발자국, 흑역사를 지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의 빗나간 발자국을 바르게 고쳐 줄 수는 있어도 없는 발자국은 바르게 할 수 없다는 표현도 있더군요. 이런 우리에게 특별히 이사야 예언자의 다음 말씀이 희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43,18) 위로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에18,21.23)을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과거의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에 대한 참된 신앙의 응답은 바리사이들이 외치던 구태의연한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의로움보다 더 큰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은 오늘날 흔히 표현하는 大義名分과 유사하다고 생각되는데, 대의명분이란 사람이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지켜야 할 본분이나 도리를 뜻합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 대의명분이란 틀에 연연할 때, 소수의 약자와 장애인 그리고 타인의 배려와 도움을 절실히 필요한 죄인들에겐 숨을 자리와 숨 쉴 여백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의명분에 얽매여 그들을 판단하고 단죄할 때, 자신과 화해는 물론 타인과 세상과 화해를 통한 새로운 통합과 친교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고 다만 되돌아옴을 보시고 새로운 기회와 시작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그러기에 우리는 배우고 깨달을 때만이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게 되고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저 자신을 잘 알고 있고, 제가 살아오면서 만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를 잘 알고 있기에,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우리의 의로움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의 의로움을 더 능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선뜻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예전 개그 콘서트의 개그 코너였던 도긴개긴처럼, 우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의로움이라는 게 사실 도긴개긴, 오십보백보인데 더 능가하지 않으면, 이라는 단서가 무척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의롭게 살고 있지 않다, 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이나 옳음에 있어서 더 능가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는 단서가 여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게 쉬운 일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당대에 의롭게 살고 옳게 산다, 고 자부하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롭게, 더 옳게 사는 것이 어디 그리 쉬웠겠습니까? 더더욱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과 제자들의 의로움의 기준은 천양지차이었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로움은 그 실천적인 면에서 훨씬 더 엄격하고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이란 기껏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데 있었던 반면,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의로움은 율법 그 이상의 것을 주님께서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과 이후의 복음에서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형식은 6개의 대당 명제로 제시되고 있는데 전자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이라면, 후자가 제자들이 살아야 할 의로움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오늘 복음에는 대당 명제의 첫 번째만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전체를 요약해 보자면, 첫째 살인하지 마라 - 성내지도 마라(마태5,21-26절), 둘째 간음하지 마라 -음란한 생각조차 품지 마라(27-30절), 셋째 이혼장을 써 주어라 - 아내를 소박하지 마라(31-32절), 넷째 거짓 맹세를 하지 마라 -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33-37절), 다섯째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앙갚음(보복)을 하지 마라(38-42절), 여섯째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 원수까지도 사랑하라(43-48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바리사이들의 의로움과 제자들 곧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의로움을 비교해서 보니 훨씬 힘들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기를 바라는 6가지 의로움은 그것을 실천하기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분명히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의로움이 어떤 것인지 알았고 아울러 우리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를 실천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늘나라의 의로움을 실천할 수 있기 위해 주님께 성령을 주시도록 청하고 찾고 두드릴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절감하셨으리라 봅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를 실천하고 실현한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실천하도록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발을 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천도 해보기 전에 나는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기보다 주님 당신께서 도와주시고 능력을 주시면 그렇게 살아 보도록 힘써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 말하도록 합시다.       “주님, 당신께서 저희의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누가 당신 앞에 감당할 수 있으리까? 주님 다만 당신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신 하늘나라의 의로움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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