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어떻게 하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전글 묵상 전과 현재의 모습?? |1|  
다음글 평생공부, 평생과제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02-24 조회수110 추천수3 반대(0) 신고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느님처럼 완전 무결한 상태의 완전을 요구하시는 것일까를 묵상해보고 또 어떻게 살면 완전한 사람처럼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성경 어디를 봐도 이 부분에 대해 시시콜콜 말씀하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주시는 숨은 의미를 우리는 읽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이라는 이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건 하느님 수준과 같은 동급의 완전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그 정도의 완전을 요구하신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묵상해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하느님 보시기에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그 해답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처럼'이라는 조사의 의미가 백프로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직유법의 처럼의 의미인지를 잘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하신 문맥적인 의미를 놓고 본다면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왜 그런지 그 근거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복음의 전체 구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인간 세상의 기준에서 사랑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수준의 사랑도 사랑이겠지만 진정한 사랑은 이런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두 사랑을 대비시키면서 결론을 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사랑 실천을 해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한글만 알면 그냥 아는 내용이지만 그렇게 해서 아는 의미는 바로 휘발성이 강한 '앎'의 수준이 되겠지만 최소한 열 번 이상 곰곰히 읽어보면 이와 같은 의미를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박해를 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 본성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동태복수법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기본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본 본성을 거슬러고 또 거슬러는 수준이 아니라 뛰어넘어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도 그렇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랑은 세리들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도 단순히 이렇게만 한정해서 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수준의 사랑은 바로 세리들 수준의 사랑과 동급이라는 말씀을 우회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결론이 되는지요? 우리는 흔히들 이렇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며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면 예수님의 상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다른 민족들도 한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다른 민족의 의미는 단순히 다르다는 의미의 다른 민족이 아니라 문맥적인 의미로 봐서는 하느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민족으로 이해를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의미일 것입니다. 

 

역으로 해석을 한다면 하느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도 그 정도로 하는데 그렇다면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 그 수준으로 해서야 어떻게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이렇게 의미를 이해한다면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완전한 사람의 의미는 의외로 단순한 것입니다. 보통 세상 사람들이 하는 수준을 능가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는 것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렇지 않고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를 하는 소리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과 같다는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묵상해본다면 얼마나 무섭고 소름끼치는지 가히 상상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 과연 우리 주변에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정말 심도 있게 묵상해본다면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거룩하게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거룩의 의미는 원래 구분되어, 떼어놓은 것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려면 세상의 보통 사람처럼 살아서는 거룩한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그런 삶을 뛰어넘을 때만이 거룩한 삶이 되고 그렇게 살 때만이 우리가 온전히 하느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