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는 왜 하느님을 믿는가? 사순 제2주일 복음을 묵상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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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02-25 | 조회수174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은 거룩한 변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을 믿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단 하나로 정의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또한 개개인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각자 그 해답은 각기 다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요?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도 처음 질문처럼 정답을 하나로 이끌어낼 수가 어렵지만 이 두 질문을 아우르는 정답이 하나 있다면 일반 세상사람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을 믿는 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 안에서 한 개인의 일생을 표현한다면 출생이 세례를 받을 때이고 마지막이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입니다. 누군가는 5년이 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40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게 그저 신앙을 가졌다고 믿는 게 아닐 것입니다. 성당을 다닌다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를 평가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지표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봤을 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와 같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보다 뭔가 다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점이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나마 조금은 설득력이 있을 겁니다. 왜 이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어떤 착각에 빠져 있는 게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기만 한다면 하느님을 믿고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학교를 가도 일등이 있고 꼴찌가 있습니다. 성당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처럼 신앙과 믿음의 정도를 성적을 매기듯이 한다면 이처럼 초등 수준의 믿음도 있고 고딩 수준의 믿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성당을 다니는 것은 마치 천국이라는 하늘나라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도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최종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 수단의 하나로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게 바로 학업에 있어서 진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학업을 연마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변화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마치 요양병원에서 콧줄로 음식을 투여하고 의식은 없고 그저 호흡만 하고 있는 환자와 같은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사망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을 우리가 살아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는지요? 이와 같은 환자가 호흡을 하는 게 마치 우리가 몸은 성당에 다니지만 행동거지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면 우리도 이와 같은 환자와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한다면 아찔하게 느껴질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토요일 어제 본당에 장례미사가 있어서 갔습니다. 13년 째 가톨릭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장례미사를 참석할 상황이 된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참례를 해왔습니다. 어제도 참례를 하면서 오늘 이와 같은 시간은 나에게도 그 시간이 언제될지는 모르지만 어김없이 온다는 사실만은 사실이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앉아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저 위치에서 저렇게 관 속에 있을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저의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장례미사는 그동안 함께 이 지상에서 나와 함께 신앙을 했던 사람들이 하느님께 잘 가라고 하는 환송 예절과도 같은 것이지 않을까? 이제 이 예절이 끝나서 내 영혼이 하느님께 갔을 때 하느님께서 "그동안 세상 살면서 애 많이 썼고 고생 많았구나. 어디 내 품에 안겨보렴." 하고 위로와 기쁨의 재회가 되어야 할 텐데 하느님을 만났는데 듣는 소리가 " 내 그토록 죄를 씻을 많은 기회와 시간을 주었음에도 죄를 씻으려고 노력은 고사하고 내 얼굴에 먹칠이나 하는 소행을 했을 때 내 마음이 어떠 했는지 알겠느냐?" 하시면서 네가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한번 보여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보여주신다고 했을 때 만약 우리가 그런 모습으로 하느님과 대면을 하게 된다는 걸 상상해본다면 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이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의 모습과 세례를 받았을 때의 신앙과 별반 차이가 없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늦었다고 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만큼의 거룩한 변모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디 가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부끄럽지는 않는 모습을 갖춘 신앙인은 되어야 최소한 하느님 얼굴에 먹칠은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도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꼼꼼이 성찰하게 되면 하느님 얼굴에 얼마나 먹칠을 했을지 생각해보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저 역시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을 믿으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다운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느님께 간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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