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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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2-26 | 조회수144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루카 6,36-38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여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여러분]
가수 윤복희씨가 부른 <여러분>이라는 노래입니다. 받은 만큼만 주려하고, 먼저 받은 다음에야 주려고 하고, 그마저도 ‘실리’를 따져가며 최소한으로만 주려고 하는 요즘 세상에서, 내가 먼저 누군가가 괴로워할 때 위로해주고, 슬퍼할 때 같이 울어주겠다는 마음, 누군가가 어둡고 험한 길을 걸어갈 때 기꺼이 같이 걸어주며 앞길을 밝혀주고, 누군가가 쓸쓸해 할 때 묵묵히 옆 자리를 지켜주는 참된 벗이자 영원한 형제가 되어주겠다는 마음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처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제한을 두지 않는 참된 사랑을 자기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실천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비슷한 처지에 빠졌을 때 당당하게 '여러분'도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제대로 받으려면 먼저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받기 위한 목적으로, 계산적으로 따져가며 주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넉넉하고 깊은 마음그릇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그 마음 그릇에 담아 내어준 그만큼, 아니 거기에 덤까지 후하게 얹어서 돌려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어줄 때는 나와 같은 인간에게 내어주지만, 돌려받을 때는 하느님께로부터 받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애가 넘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 뜻을 충실히 실천하면 그 모습을 어여삐 보시고 사랑과 은총을 차고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총과 사랑을 내 안에 제대로 담으려면 내 마음 그릇을 제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옹졸하고 인색한 마음 씀씀이로 그 크기를 줄여놓으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주님께서 아무리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셔도 내 안에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나에게 먼저, 조건없이, 한 없이 베풀어주신 그 자비를 우리도 베풀어 주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비를 베푸는 구체적인 방법을 네 가지 동사로 표현하십니다. 첫째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판은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일입니다. 둘째 ‘단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단죄는 자기 생각대로 다른 사람이 멸망하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일입니다. 이 두가지는 철저하게 하느님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일이기에, 감히 내가 그 권한을 손에 쥐고 휘두른다면 그건 ‘신성모독’이라는 대죄에 해당하지요. 그러니 둘 다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대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인간이 해야 할 일 두가지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첫째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가진 것을 필요한 이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특별한 조건이나 기준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용서하고 나누면 되는 것이지요. 부족함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 충만한 기쁨과 혜택은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희망하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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