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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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2-28 | 조회수7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24년 02월 29일 목요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불의를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여 부정한 재물을 축적하거나, 하느님의 가르침에 거스르는 길을 걸었다거나 하는 표현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라는 묘사로 재물을 남용하며 살았을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줍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쓰는 것이 흠이 아니라, 오히려 미덕이 될 수 있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그의 삶이 저승에서 고통을 받을 만큼 그릇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저지른 큰 잘못이 있습니다. 바로 ‘무관심’입니다. 문을 여는 작은 수고만 하여도, 불쌍한 라자로의 처지를 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리고 그 현실을 보면 그의 마음이 움직였을 터인데, 그는 자신의 관심을 자신과 자신의 즐거움에만 돌렸습니다. 사실 부자는 자신의 집 앞에 라자로가 있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자로를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 차가운 무관심이 부자가 저지른 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이 무관심의 문화가 하느님 사랑의 반대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무관심을 극복하고자 교회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의 현실에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 머물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안락하고 편안하게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사랑을 전하러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길에 나가 상처를 입고 더럽혀지는 그때에, 우리는 성령의 활동을 체험합니다. 문 앞에 라자로가 있었던 것처럼, 교회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우리는 이 시대의 라자로를 만날 것이고, 그들의 현실은 우리 마음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은 우리를 사랑의 실천으로 이끌 것입니다. 교회 문을 여는 작은 첫 시도에서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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