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2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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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3-01 | 조회수14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마태 21,33-43.45-46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속 비유의 핵심은 포도밭 소작인들이 그 주인에게 내어주어야 할 소출의 일부, 즉 ‘도조’(賭租)입니다. 소작인들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도조를 바친다는 것은 그가 자기가 사는 세상의 ‘주인’이자 자기 삶을 유지해주는 ‘은인’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이지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이 도조를 정확히 얼마나 바쳐야 할지가 ‘숫자’로 정해져있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소출의 일부를 그분 ‘몫’으로 내어드리면 될 뿐입니다. 하느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양보다 마음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표현되는 결과보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정성을 어여삐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은 가난한 과부를 두고 다른 부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넣었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런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늘 비유에 나오는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당연히 바쳐야 할 도조를 바치려 하지 않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자신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몸소 준비해주었음에도, 그 호의에 감사하기는 커녕 그런 호의를 받는걸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인과 나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니 주인이 날 위해 해 준 일은 작게만 보이고, 내가 주인을 위해 해주는 일은 크게만 보였지요. 그렇게 마음 속에 억울함이 점점 쌓여가고 결국 자신들이 주인이 되려는 탐욕을 품습니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주인이 마지막으로 보낸 아들, 그 포도밭의 정당한 상속자를 자기들의 포도밭을 빼앗으려는 ‘적’으로 여겨 무참히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탐욕과 죄악에 대한 벌로 소작인으로서 누리던 권리는 물론이고 하나 뿐인 생명까지 모든 걸 잃게 됩니다. ‘배은망덕’이 초래한 ‘자업자득’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직접 마련해주신 포도밭이고, 우리는 그 밭을 잘 관리하여 소출을 거두어야 할 그분의 일꾼들입니다. 일꾼이라면 주인이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거둔 결실 중 가장 좋은 것을 주인 몫으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거두는 일은 내가 했지만 심고 가꾸신 분은 하느님이심을 인정해야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계약 관계’에 얽매여 마지못해 내어드리는게 아니라, 이미 베풀어주신 큰 은혜에 감사하며 그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그저 주인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어드려야 기쁘게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봉헌을 통해 우리는 시키는대로 일만 하는 ‘일꾼’의 신분에서, 아버지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자녀’의 신분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포도밭을 맡겨주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지요. 그런 하느님의 사랑 앞에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한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군중이 두려워 예수님을 붙잡지 못했던, 자기들이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의한 일임을 알았기에 떳떳하지 못했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처럼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에 온전히 순명하시고 오직 그분 뜻에 따라서만 사셨던, 그래서 늘 당당하고 떳떳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겠습니다. 세상이 정한 규칙에 얽매여 살며 그 밑에 깔린 ‘주춧돌’이 되기보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하느님 나라의 ‘머릿돌’이 되어야겠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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